우리학교의 작은 거인 이성희(외교 64) 현마육영재단 이사장

2015-05-29

이진형, 김현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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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은 온화하고 차분해보였지만 인터뷰를 시작하는 순간 달라지는 그의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기자의 질문에 당황하지 않고 답변했던 이 이사장은 어떻게 저 작은 풍채에서 이렇게 큰 에너지가 나올까라는 의문을 갖게 했다. 작은 거인과 같은 이 이사장이 걸어온 길을 인터뷰를 통해 차근 차근 되짚어보며 현재 현마육영재단 이사장으로서 학교에 어떻게 이바지하고 있는지 알아봤다.

Q.우리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했는데 특별히 외교학과를 선택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A.고등학생 때 꿈이 외교관이나 교수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외교관이 되고 싶어 지원하게 됐다. 외교학과에 입학해 다양한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했고 외교에 대해 깊이 있는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익힌 외국어 구사 능력은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나가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현재 외교학과는 사회과학대학의 정치외교학과로 학과명칭이 변경됐다.

Q.대학생 시절 우리학교 한일회담 반대 투쟁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고 이로 인해 제적을 당했다. 이러한 경험이 이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A.6·3사태는 박정희 정권이 한일회담 반대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계엄령까지 선포했던 국가적 사건이다. 우리나라가 민주화되는 과정에 4·19혁명, 5·16혁명 등 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6.3사태는 우리 민족사회에 큰 획을 그은 사건 중 하나다. 그때 기존 위원장이 4학년이고 학군사관 후보생(ROTC)소속이라 온전히 투쟁활동을 펼치기 힘들다고 판단해 부위원장인 나에게 위원장직을 위임했다. 시위는 주로 회기동 주변에서 행해졌으며 경희대와 고려대 등 대학이 연합해 시위가 이뤄질 때도 있었다. 한일회담 반대 투쟁운동은 그동안 학생운동의 참여가 저조했던 우리학교 학생들에게 큰 자극이 됐다. 당시 위원장 활동으로 제적당해 복학하지 못했지만 한편으로는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오고 갈 곳 없던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사업이었다. 이러한 경험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자 사업가의 길을 열어준 중요한 계기가 됐다.

학교에서 제적당한 후 당숙의 권유로 주식회사 한국셀로판사업 사장직에 취임하게 됐지만 그 경력은 오래가지 못했다. 회사가 어려워지자 결국 이 이사장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여러 사업에 뛰어들었다. 영어, 독일어, 일어, 중국어 4개 국어에 능통한 그는 외국어 구사 능력이 사업과 무역을 할 때 굉장한 이점이 됐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학교를 다니는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야겠다는 마음가짐도 도전적인 사업가 정신에 한 몫 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당시 폐쇄적이었던 한국에 생소한 외국의 물건을 들여와 돈을 많이 벌었다.

Q.초기에는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물품보다 생소하고 독특한 물건을 수입해 판매했다. 그렇게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A.그것은 일종의 사업 전략이었다. 사업 분야를 찾는 과정에서 해외에는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도입되지 않은 생소한 물건을 판매하면 성공할 것이라 생각했다. 외국에서 냉동 곰을 가져와 팔았고 국내에선 수요보다 공급이 턱없이 부족했던 우황을 팔기도 했다.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 속에는 여전히 우리가 찾지 못한 시장이 있다. 남들이 도전하지 않은 빈틈을 찾아 공략하면 성공할 수 있다.

이러한 그의 경영관을 단적으로 보여주듯 그는 일본을 다녀와 그곳에서 받은 영감으로 한국 최초의 쌀통 제작회사를 설립했다. 그 회사의 이름이 바로 주식회사 부신이다.

Q.주식회사 부신은 자본금 200만원으로 시작해 7년 만에 회사의 규모가 20배 급성장했다. 하지만 그 회사를 돌연 처분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A.1970년대에는 정부가 수출을 지향하는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부신기업은 내수산업 중심의 기업이었기에 정부의 정책과 맞지 않아 성장의 한계를 느꼈다. 이후 시장 탐색의 시선을 국내에서 국외로 돌리게 됐고 과감하게 회사를 처분했다. 사실 이런 과감한 결정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Q.이후 무역업을 주로 하는 주식회사 삼우무약을 설립했다. 이 회사에서 외국인들에게 생약을 판매하는 과감한 도전을 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
A.약은 크게 양약과 생약으로 나뉜다. 이중에서 생약의 주원료는 동물과 식물으로부터 추출한다. 하나의 예로 옥수수에서 주원료를 추출하는 '인사돌'이 있다. 아시아에서의 생약 시장은 일본과 중국이 이미 장악하고 있었지만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유럽의 생약 시장은 미개척 분야라고 생각했다. 생약의 주원료인 동물과 식물은 전 세계 어디를 가든 존재하기 때문에 더욱 세계적인 생약시장에서 가능성을 봤다. 그래서 사업을 하기로 결심을 했고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등지를 두 발로 뛰어다녔다. 안가본 나라가 없을 정도로 당시 해외시장을 수백 번이나 다녀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국가에서 이미 생약이 싼 값에 판매되고 있었고 이는 중국과 일본에서 수출하는 제품이었다. 그러나 거기에서 좌절하지 않고 일본과 중국이 아직 선점하지 못한 시장에 약을 가져다 팔았고 우리나라에 들여오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번 돈을 혼자 소유하기보다는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급변하는 기업사회 속에서 계속 살아남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더 이상의 욕심은 버리고 앞으로는 환원하는 일을 중점적으로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같은 정신으로 이 이사장장은 현재 카자흐스탄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을 위해 여러 지원을 하고 있다.

Q.카자흐스탄 현지대학에 한국어강좌 개설을 도와 고려인들이 우리말을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고려인 후원 사업에 관심을 두고 열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A.과거 우리나라의 수입 전체를 전담하는 경제단체인 한국수입협회 협회장을 역임하던 시절 수입사절단과 함께 카자흐스탄에 우연히 방문한 적이 있다. 우리와 얼굴은 똑같은데 한국어를 구사할 줄 모르는 고려인들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그들이 내 손을 붙잡고 말없이 울었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에게 우리말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카자흐스탄 알파라비(Al-Farabi) 국립대학에 한국어과를 설립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컴퓨터와 같은 모든 기자재도 지원하고 있다.

그의 기부활동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더 나아가 그는 우리학교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지원 사업을 2011년부터 진행해 오고 있다. 그것이 바로 ‘현마육영재단’이다.

Q.현마육영재단을 설립하고 후배들을 위해 장학금을 지급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A. 경제단체장을 역임하고 10년간 교수활동도하며 이제는 70살이 넘은 나이에 자서전을 써보니 사업을 통해 얻은 돈을 더 좋은 곳에 환원해야 할 때가 됐다고 느꼈다. 국가를 위해 환원하는 것도 좋지만 내가 졸업한 모교를 위해 환원하려고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처음에는 15억의 자금으로 설립해 시작했지만 현재는 47억원 정도 규모의 장학재단으로 발전했다. 이번 해에는 4명을 전액장학생을 선발했고 현재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는 학생들은 총 12명이다. 나는 조금 더 재단을 육성하고 발전시킬 계획이다.

Q.과거의 행적이나 현재의 활동 등을 봤을 때 기부와 사회에 대한 환원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특별한 기부관이나 환원에 대한 신념이 있는가?
A.기부하는 사람은 철저하게 대가를 바라지 않아야 하며, 기부를 받는 사람은 철저하게 기부에 대한 고마운 점을 기록해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 기부하는 사람은 기부를 하면서 학교 측에 대가를 바라면 안 된다. 학교에 기부하는 사람들이 돈만 많다고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나름의 철학이 있는 사람들이 기부하는 것이다. 기부를 받는 입장인 학교가 학교의 관계자들이 바뀔 때마다 기부를 누가 했는지, 그 단체가 무슨 단체인지도 모른다면 그것은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정확한 인수인계를 통해 차질없이 기부자들에 대한 기본적 예우가 갖춰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 이사장은 기부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밝히면서 이야기 하나를 들려줬다. 그것은 우리학교에 기부하기 전에 아들이 기부를 만류하며 그에게 들려준 이야기다. 아들 지인의 아버지도 거액기부로 학교 측에서 동상을 세웠지만 관리소홀로 동상이 엉망이 됐다. 이런 동상을 본 아들의 지인이 학교에 항의했지만 이 동상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고, 누구냐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한다. 이를 전하며 아들은 기부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지만 그는 기부할 때 대가를 바라면 안된다는 생각에 결국 기부하기로 결심했다. 지금은 많은 사람이 모를지라도 언젠가는 이 활동을 기억해주고 명심할 날이 올 것이라며 다시 한 번 그의 기부철학을 강조했다.

Q.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A.현재 김인철 총장 뿐만 아니라 학교 관계자들과 보직교수, 학생들이 현재의 현마육영재단을 알아주고 기억해주고 있어 앞으로도 꾸준히 장학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현마육영재단은 사업 목적에 우리학교 재학생에게만 장학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는 만큼 앞으로 학생들에게 더 아낌없이 경제적인 지원을 해 나갈 것이다.

[이성희 이사장이 걸어온 길]
1964년 3월.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교학과 입학
1965년 8월. 한일굴욕회담 반대 63학생운동 주동자로 복역후 제적
1966년~1971년. 한국 셀로판산업(주) 대표이사
1972년~1978년. (주)부신 대표이사
1994년~현재. (주)현마산업 이사회장
1995년년 10월~현재. 주한 안티구아 바뷰다 명예영사
1999년~2011년. 대한상사 중재원 중재인
1999년~2001년. (사)한국수입업협회 제14대 회장
1999년 1월. ‘자랑스런 외대인’상 수상
2001년~2010년.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영대학 초빙교수
2004년~2005학년도. 한국외국어대학교 강의상 수상
2010년~현재. (재)현마육영재단 이사장

사진 이진형 기자 89matteo@hufs.ac.kr
글 김현진 기자 90hyung1781@hufs.a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