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항력의 매력, 불가리아 생활을 돌아보며

20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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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학을 전공해서 이번에 불가리아로 유학을 가게 됐어요.”

“아~ 불가리스! 맞죠?”

대부분에겐 익숙한 유제품 상표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그곳, 불가리아는 간혹 몇몇 사람들이 “장미와 장수의 나라 아니냐”고, “키릴문자를 사용하지 않느냐”고 덧붙여 주는 게 고맙게 느껴지는 동유럽 발칸반도의 생소한 나라다. 우리학교 ‘아너스 프로그램’ 장학생으로 선발돼 지난해 9월부터 이번 해 6월까지 약 9개월 동안 불가리아에서 생활하는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아너스 프로그램은 2016년도부터 정부 및 기업의 해외진출 맞춤형 교육을 통한 전략 지역 전문 인재 양성을 목표로 운영되는 프로그램이다. 해외연수 한 학기와 해외인턴 한 학기로 총 1년 과정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사정에 따라 한 학기만 진행되는 ‘인턴 only 과정’에 참여할 수도 있다. △어렸을 때 하지 못했던 해외 유학 생활에 대한 동경△전공 국가인 불가리아 생활에 대한 호기심△흔치 않은 해외 현장 실습 경험을 쌓을 수 있단 이유 등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지난해 2학기는 소피아대학교와 동 대학교 부설 어학원에서 외국인을 위한 불가리아어 수업을 들었고, 이번 해 1학기는 현대자동차 불가리아 법인에서 현장실습 인턴으로 지냈다.
지난해 9월 18일, 불가리아 땅에 발을 디뎠다. 학기가 시작되는 10월 전까지 현지 생활에 적응하고자 특별한 일정이 없어도 매일 집을 나섰다. 전공 국가다 보니 교통수단의 안내방송을 듣는 것이나 표지판과 상점 간판을 읽는 것 등 일상 그 자체가 학습의 장이었다. 특히 택시를 타는 것은 아주 좋은 회화 실습 시간이었다. 학기가 시작한 후 오전엔 수업을 듣고, 오후엔 한국학을 전공하는 현지인 친구들 또는 같은 유학생 신분의 여러 나라 친구들과 어울리며 서로의 문화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에게 직접 전해 듣는 각 나라의 사정은 좋고 나쁨의 여부와 상관없이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불가리아에서 보기 힘든 동양인인데다 한국인인 나에게서 듣는 얘기는 그들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공휴일△방학△주말 등 수업이 없는 날이면 근교 도시와 근처 유럽 국가로 여행을 다녔고 여러 행사에 참가했다. 그중에서도 △국경일 기념 리셉션△한글날 기념 세종학당 행사△한국·불가리아 친선 국악 공연 등 타지에서 한국인이란 이유만으로 참여할 수 있었던 행사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특히 첫 투표를 주 불가리아 대한민국 대사관에 마련된 재외투표소에서 했던 것은 정말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또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유로운 기업 문화다. 인턴은 처음이라 잔뜩 긴장하고 첫 출근을 했는데 법인장님께서 나를 손녀처럼 대해 주셨다. 윗사람과의 자리에서 상하 위계를 느끼지 못했단 것은 유교 국가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번 해는 우리나라와 불가리아의 수교 30주년이라 예정된 행사가 많았는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로 인해 취소되며 더 많은 현장을 경험하지 못한 것에 당신이 미안해하시기까지 했다. 이런 작은 배려가 모여 편한 근무환경이 조성됐다.
불가리아학 전공생으로서 불가리아에 가는 이에게 대자연 감상을 꼭 추천한다. 불가리아는 아직 개발되지 않아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천혜의 자연을 경험할 수 있는 장소가 많다. 도심 공원부터 근교 도시까지 날 것 그대로의 자연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보존이 잘 돼 있다. 도심공원에선 울창한 숲을 만날 수 있고 등산로에선 표지판을, 스키장에선 방어벽을 찾기 힘들다. 다소 위험천만하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그만큼 기적 같은 자연을 경험할 수 있다. 광활한 자연이 주는 감동에 벅차 눈물을 흘릴 뻔한 적이 있었단 것은 숨기고 싶지 않은 비밀이다. △근교에 있는 릴라 산△보로베츠의 스키장△벨리코 터르노보△소피아 시내에 있는 비토샤 산을 추천한다. 우리나라에선 익숙하지 않은 트램, 트롤리 버스와 같은 교통수단도 하나의 즐길 거리라고 할 수 있다. 물가가 비싸지 않아 자연스럽게 교통비도 저렴하므로 다양하게 이용해 볼 것을 권한다. 심지어는 택시도 가난한 유학생이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을 정도다. 또한 교통수단과 택시를 위한 애플리케이션이 잘 돼있어 키릴 문자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귀국했을 때 많은 사람이 “고생했다”나 “수고했다”와 같은 말을 건넸다. 하지만 사실 내 유학생활은 오히려 순탄한 편이었다. 불가리아 생활이 안정기에 접어들 때 코로나19로 인한 비상사태가 선포된 위급한 상황도 있었다. 그러나 난 모든 일정을 무사히 마쳤단 것에 감사하다. 또한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했던 자립심을 얻은 것에도 감사하다. 항상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행했던 일들을 혼자 해냈을 때의 뿌듯함은 다른 뿌듯함과는 달랐다. 내 능력의 범위가 확장된 것을 그 자리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단 사실이 색다른 감정을 안겨줬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나름 많은 것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날씨가 좋지 않더라도 외출할 걸△다시는 일상이 아니게 될 일상을 좀 더 소중히 여길 걸△사진과 영상을 좀 더 많이 찍어둘 걸과 같은 아쉬움이 남는다. 후회와 미련이 남는단 것은 그만큼 애정이 있었단 것으로 생각된다. 만일 해외 유학 경험이 주어진다면 이런 감정이 최소한으로 남도록 최대한 많은 것을 시도해보라고 하고 싶다. 그리고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전해주고 싶다. 나 자신에게 강조하고 싶은 다짐이기도 하다.
이제 날 기다리고 있는 건 이수해야 할 학점이 수두룩하게 쌓여있는 3학년 2학기지만 지난날의 기억으로 나아가 보려 한다. 우리학교 학생만이 경험할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을 재학 중에 꼭 경험하길 바란다.

글·사진 오하린(국제지역·그불 18)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