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이어 우리나라를 덮친 갑질 바이러스

2020-06-15

조현수 기자 | 100hyunx@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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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직원 폭행 동영상이 논란되며 갑질을 방지하기 위한 법안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에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그러나 약 1년이 지난 지금까지 갑질 문제는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달 아파트 경비원 갑질 문제가 불거지며 현행법의 실효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렇듯 사회에 갑질이 만연한 가운데 △최근 갑질 사건△근로기준법의 한계점△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알아봤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비껴간 우이동 경비원 갑질 사건

지난해 7월,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하 괴롭힘 금지법)이라 불리는 △근로기준법△산업안전보건법△산해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이 법은 직장 내 괴롭힘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갑질에 대한 법적 규율 기반을 마련했단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되기 위해선 세 가지 요소인 △신체·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경우△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은 경우△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한 경우를 모두 충족해야 한다. 또한 동료 근로자가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인 경우 사용자에게 신고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후 사용자는 즉시 조사에 착수해 가해자를 징계 처분해야 한다. 만약 피해 직원에게 해고 등의 불이익 처우를 하는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그러나 근로기준법 개정에도 여전히 갑질 문화가 개선됐다고 보긴 어렵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의 2,469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후 61.8%가 ‘달라진 점이 없다’고 응답했다. 실제로 지난달 10일, 서울 강북구 우이동 아파트의 최희석 경비원(이하 최 씨)이 입주민 심 씨에게 폭언·폭행을 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달 27일, 심 씨는 검찰에 송치됐으나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이에 청와대 국민청원엔 심 씨를 처벌하란 글이 올라왔고 43만여 명이 동의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앞선 사건을 언급하며 괴롭힘 금지법의 사각지대를 지적했다. 괴롭힘 행위자가 사용자 또는 동료 근로자로 제한돼 있어 제3자가 가해자인 경우 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파트 경비원은 주로 용역 업체를 통해 고용된다. 따라서 입주민인 심 씨는 사용자에 해당되지 않아 해당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이에 인권위는 직접 고용하지 않았더라도 갑질 가능성이 있는 모든 이가 가해자로 인정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사각지대

괴롭힘 금지법은 그 개념과 적용 기준이 불분명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첫 번째로 직장 내 괴롭힘의 개념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기업은 자율적 갑질 해소란 정책 취지에 맞게 자체적으로 구체적인 괴롭힘 행위를 정의해야 한다. 이에 한국노동연구원은 고용노동부가 발간한 가이드라인 및 사례집 등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로 업무상 정신적 스트레스가 발생한 것을 증명하기 어렵다. 법에 명시돼 있지 않고 판례 역시 단편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괴롭힘이 인정된다 해도 ‘업무상 적정범위’란 기준이 불분명해 사업주가 중징계를 내릴 가능성이 적다. 실제로 지난달 고용노동부가 공개한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사건 현황’에 따르면 법 시행 후 8개월여 동안 검찰에 송치된 사건은 22건에 불과했다. 심지어 갑질 피해 직장인을 돕는 민간 공익단체인 ‘직장갑질 119’는 괴롭힘을 신고한 일부 직장인이 2차 피해를 보고 있다고 밝혔다. △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 징계△불이익 처우△신고 무시 등의 2차 가해가 상습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직장갑질 119는 피해자의 신고가 사용자에게 공개되는 부분이 개정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괴롭힘 금지법의 한계점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재택근무가 실시되며 다시 한 번 드러났다. 이번 해 3월, 취업정보 사이트 ‘사람인’에서 1,089개의 기업을 대상으로 ‘재택근무 실시 여부’를 조사한 결과 국내 기업의 40.5%가 재택근무를 실행하고 있거나 실시할 예정이다. 이런 재택근무로 인해 업무 시간 외에도 메신저를 통해 지시하는 사례가 다수 등장하며 논란이 불거졌다. 일각에선 괴롭힘 금지법이 시대를 못 따라 오고 있단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행법 상 업무 시간이라도 업무상 목적이 명확하지 않은 과도한 지시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 그러나 지시 횟수, 업무상 필요도를 측정하는 명확한 기준이 없어 피해로 인정되기 어렵다. 재택근무가 보편화되는 시대의 변화에 맞게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보완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

직장갑질 119는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6개월 동안 조치의무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괴롭힘 금지법을 보완할 수 있는 후속 입법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괴롭힘 행위자 개념 확장△2차 피해 방지△노동청 직접 신고△처벌 강화 등의 내용을 추가해 법의 실효성을 제고시켜야 한단 것이다. 해외에서도 이런 논의가 꾸준히 진행됐다. 독일은 20년간의 판례를 바탕으로 직장 내 괴롭힘 개념을 수립해 명확성을 높였다. 더불어 피해자는 사용자에게 적절한 보호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 또한 △영국△프랑스△호주는 괴롭힘 방지법과 더불어 형사처벌 규정을 마련했다.
한편 노동조합(이하 노조)의 중요성 또한 강조됐다. 문강분 행복한일연구소 대표노무사는 “노조가 먼저 직장 내의 괴롭힘 실태조사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노조가 직장 내 괴롭힘을 정의해 노사협약을 진행해야 한단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하 한국노총)이 주최한 ‘직장 내 괴롭힘과 노사관계’ 토론회에서 현재 노조의 협약 참여 기회가 보장되지 못하고 있단 문제가 제기됐다. 이에 문성덕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변호사는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에 노조가 참여할 수 있는 절차를 명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같이 노조의 협약 참여 기회를 보장해 괴롭힘 금지법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단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다양한 유형의 갑질 피해와 새로운 근무 형태가 나타나는 가운데 괴롭힘 금지법이 노동자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조현수 기자 100hyunx@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