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가진 힘을 믿는다

2020-06-04

기자 |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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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활자 중독이란 소리를 들을 만큼 글을 읽었다. 여전히 글을 많이 읽긴 하지만 초등학생 땐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붙들고 살았다. 방과 후 내 발걸음은 항상 도서관을 향했고 길을 걸을 땐 물론 심지어 화장실을 갈 때도 책을 읽었다. 그러나 이땐 단순히 쉽고 재밌는 글만 읽었고 사회에 관해 얘기하는 지루한 글엔 손도 대지 않았다. 그래서 글이 사회를 보는 방식에 변화를 줄 수 있음을 알지 못했다.
2016년 5월, 난 강남역 살인사건을 맞닥뜨렸다. 한 여성이 성별만을 이유로 살해당한 사건을 보며 이로 인한 무력감과 공포심을 처음 느끼게 됐다. 하루하루가 혼란스러움의 연속이었던 가운데 아는 오빠는 강남역 살인사건이 가해자의 정신질환으로 인해 일어난 일련의 살인사건 중 하나라 말했다. 또한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말란 말을 덧붙였다. 머리를 세게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나와 내 주위의 여성을 끊임없이 피해자에 대입하며 고통스러워했던 나와는 달리 남성은 자기 일이 아니라며 가볍게 생각할 수 있단 것에 충격을 받았다. 사회 내의 성별 격차를 느끼게 된 것이다. 왜 이런 성별 격차가 존재하는 것이며 왜 난 어떠한 대응도 하지 못했을까 하는 분한 마음에 처음으로 단순한 흥미가 아닌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글을 읽기 시작했다.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한 이후로 한국 사회 내에 뿌리 깊게 박힌 여성 혐오에 대한 글을 수없이 탐독하며 머릿속을 정리했다. 이런 경험은 즐겨보던 예능, 드라마가 얼마나 여성 혐오적인지 깨닫게 해줬고 나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의하게 했다. 글을 통해 사회를 보는 방식이 바뀐 것이다.
여성 인권에 대한 관심은 여성을 포함한 소외된 집단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졌다. 약자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떤 불편함을 겪는지 알아보기 위해 책과 함께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기자들은 사회적 사각지대에 놓인 약자의 삶을 취재하고 글을 써 사람들에게 알렸다. 사람들은 그에 긍정이든 부정이든 주관에 따라 반응하고 약자의 삶에 주목했다. 이처럼 주목받지 못했던 약자의 삶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기사를 통해 글의 힘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글을 통해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된 난 학교 내 문제에 대한 글을 써 학교 구성원에게 알리고 싶단 포부를 갖고 외대학보에 들어갔다. 그러나 담대했던 내 포부와 달리 기사를 쓰며 오히려 내가 학교 문제에 무지했단 것을 알게 됐다. 재학생의 주거 문제, 학과 통폐합 문제 등을 취재하며 학생들의 불편함과 학교 측의 입장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런 기사는 학보이기에 쓸 수 있는 의미 있는 기사다. 내가 기사를 쓰며 느꼈던 시야의 확장을 독자도 느낄 수 있게 하는 글을 쓰고 싶어졌다. 앞으로 남은 외대학보 생활을 통해 시야를 확장하는 힘을 가진 글에 한 걸음 더 다가서고 싶다.

*페미니스트: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경제△사회 문화적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견해나 사상을 주장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