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역, 성소수자 혐오로 위기 맞나?

2020-06-04

이준성 기자 | 100leejs@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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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7일, 이태원의 클럽 세 곳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확진자가 방문해 방역 당국에 다시 비상이 걸렸다. 그런데 이 클럽들이 성소수자들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곳이었단 점이 일부 언론의 보도에 의해 알려지게 됐다. 이에 해당 언론의 노조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을 강제로 노출시키는 ‘아웃팅(Outing)’으로 사회적 낙인에 대한 두려움을 가중시켜 방역을 어렵게 했단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의 시선을 여전히 보내고 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성소수자 혐오가 어떤 식으로 작용했는지와 필요한 대응을 알아봤다.

◆ 코로나19 방역의 걸림돌이 된 성소수자 혐오

우리나라엔 고질적으로 성소수자 차별 문제가 존재한다. 이번 달 15일, SOGI법정책연구소(이하 연구소)가 발표한 ‘2019 한국 LGBTI* 인권 현황’에 의하면 우리나라 성소수자 인권 지수는 8.08%에 그쳤다. 같은 기준으로 평가한 결과 유럽 49개국 중 46위를 차지한 러시아의 성소수자 인권 지수가 10.20%임을 고려할 때 이는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연구소 측은 우리나라의 낮은 성소수자 인권 지수의 원인으로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악으로 인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권한 제한△반(反)성소수자 단체의 혐오 선동△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관한 차별적 시선△정부와 지자체의 성소수자 공공행사 방해△포괄적 차별금지법·혼인평등제도의 부재 등을 들었다. 우리나라보다 성소수자 인권 지수가 낮게 평가된 국가는 △아르메니아(6.49%)△터키(5.16%)△아제르바이잔(3.33%) 등이 있다. 반면 상위국가로는 몰타(90.35%)·벨기에(73.08%) 등이 올랐다.
이태원 사태’로 인해 왜곡된 성소수자 인식은 노골적인 혐오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런 성소수자 혐오는 코로나19 방역 전반을 방해하고 있다. 성소수자 전체를 대상으로 한 일부 대중의 무분별한 비난은 의심환자가 코로나19 검사를 꺼리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코로나19 대응을 ‘K-방역’이라 부르며 극찬했던 외신조차 이번 사태에 대해 걱정을 표했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한국의 성소수자는 신상 공개의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며 “이태원 사태를 계기로 발생할 차별과 혐오가 우려된다”고 전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성소수자 혐오 앞에 한국의 방역모델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AP 통신’의 경우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그들의 자발적 검사를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특히 AP 통신은 우리나라의 성소수자 인권 단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성소수자가 직장 혹은 가정 내의 불이익에 대해 걱정한단 점을 강조했다.

◆ 언론의 혐오성 보도 논란

이번 사태와 관련한 성소수자 혐오의 시작엔 언론의 비윤리적 보도가 있다. 해당 사태를 단독 보도한 보수 개신교 계열의 한 언론사는 ‘게이 클럽’, ‘찜방’ 등의 용어를 제목에 배치했다. 집단감염이 발생한 원인이나 방역 대처와는 전혀 무관한 내용을 강조한 것이다. 이에 이번 달 12일, 해당 언론사의 노동조합(이하 노조)은 성명문을 통해 자사 보도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내놨다. 노조는 “인권보도준칙에 따르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 경우 성적 지향이나 정체성을 밝힐 수 없게 돼 있다”며 “굳이 불필요하고 자극적인 표현을 쓴 것에 대해 자성하고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이들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언론의 보도 때문에 방역에 많은 어려움이 생겼다며 회사 측이 공식적인 입장을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시점에도 혐오성 보도는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많은 언론이 사건의 본질과 관계없는 단어를 제목에 배치하고 있는 것이다. ‘게이가 말해주는 게이클럽 위생실태’, ‘이태원 게이클럽에 코로나19 확진자 방문... 이태원 비상’ 등이 이에 속한다. 이런 제목은 책임을 특정 집단에게 전가하는 듯한 어조를 담고 있단 지적을 받았다. 동시에 이런 보도 행태는 아웃팅 논란을 몰고 오기도 했다. 아웃팅은 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밝혀지는 것을 의미한다. 코로나19 방역의 특성상 확진자의 신상은 특정되기 쉽다. 따라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방문한 클럽의 성격을 밝히는 것 자체가 아웃팅으로 이어질 수 있단 것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의 ‘신문 방송 모니터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달 7일부터 11일까지 △동성애△게이클럽△게이 등의 키워드를 쓴 기사는 1076건에 달한다. 민언련은 “‘게이클럽’이 아니라 ‘클럽’이기 때문에, ‘성소수자’가 아니라 ‘많은 사람’이 운집했기 때문에 사태가 벌어졌단 점을 정확히 주지해야 한다”며 “언론의 자유를 말하고 싶다면 소수자 혐오부터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학교에 재학 중인 성소수자 A 씨는 성소수자를 움츠러들게 하는 아웃팅의 위협을 지적했다. A 씨는 “성소수자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당당하게 여기지만 사회에 만연한 혐오 정서는 그들이 당당히 살아가지 못하도록 한다”고 전했다.

◆ 대중의 혐오

언론으로부터 출발한 혐오는 대중에게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물론 모든 국민이 성소수자를 배척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온라인상에선 이들을 향한 끊임없는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 우리학교 재학생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서도 혐오 표현을 담은 게시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중 한 게시글은 성소수자와 신천지 신도를 한데 묶어 힐난했으며 이외에도 성소수자를 향한 원색적인 비난글이 많았다.
A 씨는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는 사고방식을 우려했다. 이어 “근거가 없단 것이 혐오의 특징이다”며 “혐오자는 코로나19 사태를 기회 삼아 비난을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일각에서 바이러스를 피하기 위해 전파자 집단을 배제하겠다는 논리를 펼치는데, 왜 그간의 감염자 집단엔 이렇게 반응하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 사회와 정부의 대처

이번 달 12일,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를 포함한 4개 인권 단체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연합해 ‘코로나19 성소수자 긴급대책본부(이하 성소수자 본부)’를 출범시켰다. 성소수자 본부는 성소수자가 차별 없이 안전한 검사와 진료를 받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코로나19 사태 관련 성소수자 상담 전화를 운영하는 동시에 차별적인 보도를 내놓은 일부 언론사를 상대로 보이콧 운동도 진행하고 있다. 해당 본부는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인권침해 상담을 진행하고 방역 당국과 소통해 성소수자 혐오에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달 14일, 최영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하 최 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이태원 집단 감염으로 인한 성소수자 혐오 확산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성명문에서 최 위원장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중지하는 것은 공동체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성소수자 본부와 긴밀히 협조해 방역 와중에도 상처받는 국민이 없도록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이번 달 14일부터, 방역 당국은 의심환자의 신상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익명검사를 확대 시행했다. 이에 따라 전국적으로 코로나19 검사 수가 빠르게 증가했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전략기획반장은 “익명검사 도입과 함께 확진 환자의 동선 공개 가이드라인을 개선해 방문한 시설과 개인을 특정하기 어렵게 했다”며 “노출에 대한 걱정에 검사를 꺼리던 국민도 검사에 임해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방역 당국과 사회 각개의 노력으로 코로나19의 위협과 성소수자 인권 침해 문제가 모두 잠재워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LGBTI: 레즈비언(Lesbian)·게이(Gay)·양성애자(Bisexaul)·트랜스젠더(Transgender)·간성(Intersex)의 앞글자를 딴 표현으로 성소수자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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