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식이 법 시행, 그 후 상황은

2020-04-16

이서미 기자 | 99seomi@hufs.ac.kr

조회수 246 댓글 0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발생한 어린이 보호구역 내 교통사고는 총 2,509건이다. 이중 사망한 어린이는 33명, 상해를 입은 어린이는 2,612명이다. 지난해 일명 ‘민식이 사건’ 이후 어린이 보호구역 내 교통사고에 대한 관심이 모아졌다. 이에 힘입어 지난달 25일 ‘민식이 법’이 시행됐다. 그러나 민식이 법이 시행된 지 9일 만에 개정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왔고 그 참가자는 29만 명에 달했다. 이에 민식이 법의 내용과 그에 대한 논란을 살펴봤다.

◆민식이 법의 발의 배경

지난해 9월 11일, 고(故) 김민식 군(이하 김 군)은 어린이 보호구역인 스쿨존에서 동생과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숨졌다. 김 군이 건너던 횡단보도 맞은편엔 김 군의 부모가 운영하는 가게가 있었다. 이에 김 군의 어머니는 사고 직후 현장을 목격했다. 사고가 난 장소는 어린이 보호구역이었다. 그러나 이곳에 신호등이나 과속단속카메라가 없어 논란이 됐다. 한편 1995년 어린이 교통사고를 막기 위해 ‘어린이 보호구역 지정 관리에 관한 규칙’이란 법이 제정된 바 있다. 이에 따라 어린이 보호구역은 학교나 유치원 정문에서 300m까지의 구역으로 주·정차가 금지되며 주행속도도 30km/h 이내로 제한돼 있다. 하지만 신호등이나 과속단속카메라를 설치할 법적 의무가 없어 단순 표지판만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지난해 10월 1일, 김 군의 아버지는 어린이 보호구역 안에 신호등과 과속단속카메라 설치를 의무화하고 어린이 보호구역 내 사망사고 시 가중 처벌해 달란 내용을 청와대 국민청원에 게시했다. 이후 법안이 발의됐으나 전국 스쿨존에 과속단속카메라를 설치할 경우 1조 원 이상이 든단 이유로 법안제정이 미뤄졌다. 해당 법안제정이 탄력받은 계기는 지난해 11월 19일 진행된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이 묻는다, 2019 국민과의 대화’다. 이날 김 군의 부모는 민식이 법 통과를 호소했다. 이후 같은 해 12월 10일, 해당 법안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일명 민식이 법은 ‘도로교통법’ 과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대한 개정안을 통칭한다. 도로교통법 개정으로 인해 어린이 보호구역 내에서 차량 30㎞ 이하로 운전해야 하며 △과속 단속 카메라△과속 방지턱△신호등 설치가 의무화됐다. 또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은 운전자가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13세 미만의 어린이를 사망·상해에 이르게 할 경우 가중 처벌한단 내용이다. 개정된 법안에 따르면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어린이가 사망할 경우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어린이 상해의 경우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의 벌금부과로 처벌이 대폭 강화된다.

◆민식이 법에 대한 논란

지난달 25일, 민식이 법은 시행 9일 만에 논란에 휩싸였다. 이 법안에 대한 개정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29만 명에 달한 것이다. 해당 청원인은 “특정범죄 가중 처벌 개정안은 형벌 비례성 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비례성의 원칙은 특정한 목적을 달성시키기 위해 적절한 수단을 사용해야 한단 형법이다. 즉 특정범죄에 대해 가중 처벌해선 안 된단 것이다. 민식이 법 시행으로 어린이 보호구역 내 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음주운전 사고 가해자와 같은 3년 이상 혹은 무기징역을 받게 된다. 물론 운전자가 모든 안전의무를 준수했고 무과실로 판명된다면 가중 처벌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교통사고에서 운전자 무과실 판정은 매우 드물단 점에서 이는 과도한 처벌이란 것이다.
또한 ‘민식이 법’은 운전자의 과실과 고의를 구분하지 않는단 비판을 받는다. 우리나라 법에선 강간과 같이 고의성이 드러난 범죄의 경우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이에 민식이 법은 과실에 대해서도 고의와 같은 수준의 처벌을 부과한단 점에서 문제가 제기됐다.
법안 발의 과정에 대해서도 지적이 있었다.. 국회 입법과정에서 의원들이 숙고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단 것이다.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명수 자유한국당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담당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되자마자 바로 통과됐다. 처벌 형량이 의원 발의안 그대로 정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은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법원행정처장·법무부 차관 등이 참여해 전문적 관점에서 의견을 내고 여러 요소를 반영해 조정된다. 그러나 민식이 법은 해당 과정이 생략되고 처벌형량도 조정되지 않아 부실한 법안이란 것이다.

◆전 세계의 어린이 보호구역 추세

스웨덴은 어린이 보호구역이 아닌 ‘홈(Home)존’을 도입했다. 학교 앞 도로만 규제하는 것이 아닌 어린이가 활동하는 구역 전체에 차량 진입을 금지한다. 학교 주변 도로엔 20cm 방지턱이 있어 감속을 유도한다. 이로 인해 스웨덴은 연간 어린이 사망자가 10만 명당 2.5명 수준으로 세계에서 적은 편에 속한다. 미국은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교통법규를 위반하면 벌금·벌칙이 2배이며 통학버스가 정차했을 땐 추월할 수 없다. 또한 반대 차로의 차량도 정지하거나 감속해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제한 속도를 초과하면 경고등에서 점멸신호가 들어온다. 이밖에 일본은 1972년부터 어린이 보호구역을 도입해 △자동차의 통행규제△제한 속도 20km/h 이하로 제한△배치 가능한 모든 교통안전시설 설치를 시행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는 어린이보호구역에 어린이 횡단보도 대기소인 ‘옐로카펫’을 마련했다. 이는 운전자가 어린이를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교육부는 어린이가 횡단보도 신호대기 중 안전한 위치에 머물도록 ‘노란 발자국’도 설치했다. 정부는 이를 우선으로 이번 해 100개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시범적으로 실시한다. 이어 2022년까지 천여 개의 학교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처럼 국가마다 대응 정도엔 차이가 있으나 어린이 보호구역 내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법적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이서미 기자 99seomi@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