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의 대학 생활, 수월할까?

2020-04-16

조현수 기자 | 100hyunx@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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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이 비거니즘(Veganism)을 추구하고 있다. 비거니즘은 동물로부터 유래한 모든 것을 반대하는 생활방식을 일컫는다. 지난달, 우리학교 서울캠퍼스(이하 설캠) 총학생회 ‘새벽으로부터(이하 설캠 총학)’는 이런 사회적 흐름에 따라 ‘이문동 비건지도 제작 사업(이하 비건지도 사업)’ 시작을 알리며 대학 구성원들의 다양한 권리 존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우리학교 채식주의자 학생의 대학 생활이 실제로 어떤지 자세히 살펴보자.

◆채식주의 유형과 계기

채식주의자는 섭취 식품에 따라 △폴로(Pollo)△페스코(Pesco)△락토(Lacto)△오보(Ovo)△락토-오보(Lacto-ovo)△비건(Vegan)으로 분류된다. 이중 폴로·페스코는 식물성 식품을 포함해 △어류△난류*△유제품을 먹는다. 다만 모든 종류의 육류를 섭취하지 않는 페스코와는 달리 폴로는 닭·오리 등 일부 육류를 섭취한다. 다음으로 △락토△오보△락토-오보는 ‘락토’와 ‘오보’의 의미를 알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라틴어로 락토는 우유, 오보는 달걀을 의미한다. 따라서 △락토는 유제품을 포함한 채식△오보는 난류를 포함한 채식△락토-오보는 유제품·난류가 모두 포함된 채식을 한다. 마지막으로 비건은 동물에서 비롯된 모든 음식을 섭취하지 않는다. 이외에도 평소엔 비건이지만 유동적으로 육식을 하는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과 △과일△견과류△씨앗만 섭취하는 프루테리언(Fruitarian) 등 다양한 유형의 채식주의자가 있다.
이광조 한국채식영양연구소장은 “△기후변화△동물해방△의료비 절감 등의 이유에 따라 채식이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부터 4일간 실시한 외대학보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학교 채식주의자 학생도 대체로 △건강△동물보호△환경보호 등의 이유로 채식을 시작했다.

◆채식주의자 학생은 소외된 학생 식당

학생 식당(이하 학식)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식사를 제공해 다수 학생이 이용한다. 우리학교는 설캠 인문과학관과 글로벌캠퍼스(이하 글캠) △기숙사(HUFS Dorm)△어문학관△후생관에서 학식을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채식주의자 학생은 학식 이용이 어렵단 목소리가 존재한다. 지난해 12월, 양 캠퍼스 학식에서 판매한 140여 개의 중·석식 주메뉴 분석 결과 육류 미포함 메뉴는 30여 개로 약 20%에 불과했다. 육수를 사용했거나 어류 및 해산물이 포함된 메뉴를 제외하면 남는 메뉴는 산채비빔밥뿐이다. 이에 이보현(국제지역·인도 19) 씨는 “채식주의는 본인의 선택이므로 감수해야 할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비건 메뉴를 도입하면 확실히 채식주의자 학생이 편하게 식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밖에 “식단표 성분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길 바란다”는 응답도 있었다. 기존의 식단표를 통해 메뉴 성분 확인이 가능하나 육류와 일부 재료만 한정적으로 기재돼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설향 설캠 인문과학관 학식 영양사(이하 이 영양사)는 비건 메뉴 도입에 대해 어려움을 표했다. 이 영양사에 따르면 하루 최대 4,000명이 인문과학관 학식을 방문하며 그중 2,000명이 중식을 이용한다. 이에 “주메뉴 배식구가 2개뿐이라 비건 메뉴 도입 시 배식구 한쪽으로만 사람이 몰려 회전율이 낮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동시에 이 영양사는 이전에 임시로 채식 메뉴를 도입한 바 있지만 수요가 적어 실패했던 경험을 거론했다. 이에 따르면 2018년 교수회관에서 수요일마다 채식의 날을 실시했으나 해당 날만 판매량이 급감했다. 또한 본관 스카이라운지에서 판매한 샐러드는 하루에 두세 개밖에 나가지 않아 남은 채소를 전부 버려야 했다. 이를 비춰 이 영양사는 인문과학관 학식에서도 유사한 결과를 예견했다. 또한 식단표에 전 성분을 기재하는 것 역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영양사는 규정상 전 성분을 기재해야 한단 의무는 없으며 많은 학생이 궁금해하는 육류 함유 표기가 최선이라 밝혔다. 또한 △가격△배식 시간△열량 등 식단표에 적어야 할 정보가 이미 많다고 덧붙였다.
채식 메뉴 도입이 어려운 건 글캠도 마찬가지다. 임은정 우리학교 글캠 생활협동조합 식당 팀장(이하 임 팀장)은 식수와 가격 문제를 언급했다. 첫째로, 글캠 학식은 세 군데로 식수가 분산돼 자원이 한정적이다. 여기에 기숙사 입소 인원이 2,300명으로 늘어나 어문학관과 후생관을 이용하는 학생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전했다. 임 팀장은 “지난 학기 후생관 학식 이용 학생이 하루 평균 1,000명 내외였다”며 “채식 메뉴를 제공하기엔 구조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둘째로, 채식 메뉴 도입 시 가격 상승이 불가피하다. 다른 학교 생활협동조합에서 운영 중인 채식 메뉴는 모두 6,000원 이상이다. 이에 우리학교의 현재 대부분 학식 가격이 4,000원 내외인 점을 고려할 때 재학생의 반발이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임 팀장은 “지속적으로 채식 메뉴가 요구되고 학교 측의 협조가 이뤄진다면 긍정적으로 고려하겠다”고 덧붙였다.

◆총학생회의 채식주의자 복지 사업 현황

자체 설문조사에서 ‘대학 생활 중 채식주의자로서 받아본 복지가 있는가’란 질문에 설캠 총학의 간식사업 때 비건 간식을 받았단 답변이 가장 많았다. △과학생회△단과대학학생회△양 캠퍼스 총학생회는 시험 기간마다 간식 사업을 진행한다. 각 학생회별로 비건 간식 제공 여부는 다르다. 그러나 제공될 경우엔 대체로 일반 간식의 10분의 1 비율로 비건 간식을 준비한다. 이에 대해 이영우(LD·LD 16) 설캠 총학 인권연대국장은 “앞으로의 간식 사업에서 항상 비건 간식을 구비할 것이라고 확언할 순 없다”고 밝혔다. 설캠 총학은 외부 식당에서 협찬이 들어온 간식으로 사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비건 간식 제공 여부는 불투명하단 것이다.
지난달, 설캠 총학은 비건지도 사업 계획을 알렸다. 비건지도 사업 TF(Task Force)팀은 설캠 상권 내 △식당△주점△카페를 대상으로 채식 메뉴를 조사해 6월에 명단 및 지도를 배포할 예정이다. 조영지(LD·LD 19) 비건지도 TF팀장(이하 조 팀장)은 통화 및 방문을 통해 전 메뉴 식품 성분, 특정 재료 제외 조리 가능 여부 등의 정보를 수집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문 비건의 목소리’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개설해 지속해서 의견을 받을 것이라 전했다. 조 팀장은 “△건강△신념△종교 등의 이유로 특정 식품을 먹을 수 없거나 먹지 못하는 모든 식이 소수자를 대상으로 사업을 기획했다”며 “단체 행사에서 식이 소수자의 권리가 당연하게 고려되는 분위기가 형성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김정림(LD·LD 18) 씨는 “채식주의자를 위한 복지가 필요했는데 비건지도 사업이 첫걸음을 시작한 것 같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이 밖에도 설캠 총학은 매점과 학식에 비건 메뉴를 구비할 수 있는지 조사하고 있다.
한편 글캠에서 진행하던 비건 복지 사업은 없었다. 이에 박장원(자연·화학 17) 글캠 총학생회장(이하 박 회장)은 “선거를 준비하며 비건 관련 정책을 마련하고자 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고 밝혔다. 학식을 관리하는 생활협동조합에 비건 메뉴를 건의했으나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아 실제 정책으로 발전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박 회장은 여전히 해당 사안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음을 전했다. 또한 비건지도 사업에 대해선 글캠 주변엔 지도를 만들 만큼 비건 식당이 많지 않아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설명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요구가 많다면 고려해보겠단 의사를 드러냈다.

◆우리학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

트렌드모니터의 2018년 채식주의 관련 인식 조사에 따르면 △개인의 취향이다 66.8%△건강에 도움이 된다 60.8%△음식 먹는 것에 윤리 문제 거론은 과하다 53.8%의 결과가 확인됐다. 이는 채식 자체에 대해선 긍정적이나, 윤리 문제를 거론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단 양면성을 보여준다. 또한 채식주의를 이해할 수 없단 입장도 존재했다. 자체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양 불균형을 발생시킬 수 있단 점과 육식을 비윤리적인 행위로 취급해 타인에게 눈치를 준 점이 그 이유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생은 “채식주의자를 식이 소수자로 칭하며 주목하는 것은 과하다”며 “불편함은 있겠지만 성 소수자나 유색인종과 비교해 크게 차별받는 부분은 없다”고 채식주의자 관련 사업에 회의감을 드러냈다.
이처럼 다양한 논의가 오가는 가운데 채식주의는 새로운 사회 동향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채식연합은 2018년 우리나라 채식 인구가 약 150만 명으로 2008년에 비해 약 10배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학식에 비건 메뉴 도입을 성공한 대학들이 있다. 서울대학교와 동국대학교는 학식에서 채식 뷔페를 통해 비건 메뉴를 제공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지난해 국민대학교 학식은 비건 메뉴를 시범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에 국민대학교 총학생회는 “많은 학생으로부터 채식 메뉴 도입 지지를 받았다”며 “생활협동조합과의 회의를 거쳐 앞으로도 판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비건 간식을 제공하는 학교도 증가했다. 지난해 기말고사 간식 사업에서 이화여자대학교 총학생회는 유제품이 함유되지 않은 아몬드 우유와 포도당 사탕 240인분을 따로 준비했다. 또한 숙명여자대학교 총학생회는 채식주의자를 위한 야채 주먹밥을 별도로 마련한 바 있다. 이처럼 우리학교에서도 채식주의자 학생을 위한 변화가 찾아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난류: 조류가 낳은 알을 이르는 말

조현수 기자 100hyunx@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