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사건’에 응답한 정부, 계속되는 논란과 사회의 변화

2020-03-29

이현지 기자 | 100hyunzi@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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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사건이란

지난해 11월에 알려지기 시작한 n번방 사건은 해외 모바일 메신저인 텔레그램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기록이 남지 않는 텔레그램의 특성상 몇 개의 채팅방이 존재하는지 알 수 없어 n번방 사건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n번방 사건의 시발점으로 알려진 가해자는 총 8개의 채팅방을 만들어 성착취 영상을 공유했다. 이후 이런 영상을 공유하는 비슷한 형태의 채팅방이 우후죽순 생기기 시작했다. 피해자는 대부분 미성년 여성이었다. 가해자는 노출 사진을 SNS 계정에 올리는 미성년 여성에게 경찰인 척하며 접근했다. 그 뒤 신상정보를 알아내 협박한 후 성착취 영상을 찍게 했다. 성착취는 온라인에서뿐만 아니라 실제로 강간을 하는 등 오프라인에서 이뤄지기도 했다. 이와 같은 미성년자 성착취 외에도 동의 없이 대상의 얼굴 사진을 음란물과 합성해 유포하는 딥페이크(Deepfakes)* 범죄도 발생했다.
n번방 사건은 수많은 2차 가해자가 있단 점에서 이전의 디지털 성범죄와 다르다. n번방 사건의 2차 가해자는 채팅방에 입장하기 위해 아동 성폭행 불법 촬영물과 같은 음란물을 공유하거나 일정 금액의 돈을 내야 한다. 이런 인증 절차를 거쳐 채팅에 참여한 2차 가해자는 각 채팅방 당 평균 수천 명이며, 최대 접속 인원은 2만 5천여 명이었다. 기존에도 불법촬영, 딥페이크와 같은 디지털 성범죄가 존재했다. 하지만 수천 명이 이를 보기 위해 자발적으로 음란물을 공유하고 돈을 낸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밖에도 신체 훼손과 강간 등 범죄의 수위가 높고 피해자의 수가 많단 점 역시 이 사건의 특징이다.

◆처벌을 촉구하는 대중

n번방 사건의 처벌을 촉구하는 대중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이번 해 1월,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엔 n번방 사건의 해결을 위한 국제 공조 수사 요청 청원이 등록됐고 이는 한 달 새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이어 같은 달, 국회 국민동의청원(이하 국회 청원)에도 n번방 사건 해결을 촉구하는 청원이 올라와 10만 명의 동의를 얻었다. 두 청원 모두 n번방 사건이 발생한 해외 텔레그램 서버를 국제 공조 수사를 통해 추적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국회 청원에선 △수사기관의 디지털 성범죄 전담부서 신설△2차 가해 방지를 포함한 대응 매뉴얼 제작△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엄격한 양형기준 설정에 대한 법안을 의결할 것을 요구했다.
한편 4월 11일, 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가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사태의 심각성에 따라 잠정적으로 연기됐다. 시위 운영진은 “범죄자가 대가를 치룰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시위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한편 2018년, 혜화역 인근에서 불법촬영 성 편파 수사 규탄 시위가 열려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처벌을 요구한 바 있다.

◆대중의 요구에 응답한 정부

이번 달 2일, 민갑룡 경찰청장(이하 민 경찰청장)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답변했다. 민 경찰청장은 △디지털 성범죄 수사 TF 구성△텔레그램 추적 수사 지원 TF 설치△다방면의 국제공조 추진△수사 과정에서의 2차 피해 방지를 다짐했다. 청원에서 언급한 국제 공조 수사에 대해선 △2016년 네덜란드와의 공조 수사를 통한 음란물 사이트 소라넷 서버 폐쇄△2017년 미국과 영국 등 38개국과의 공조 수사를 통한 다크웹 아동성착취물 유포사이트 ‘웰컴투비디오’ 운영자와 이용자 검거△지난해 텔레그램을 이용한 사이버 성폭력 채팅방 운영자와 공범 등 67명 검거를 언급하며 앞으로의 적극적인 수사를 약속했다. 이어 민 경찰청장은 “텔레그램 상 성착취물 유포를 비롯한 사이버 성폭력을 중대한 범죄행위로 규정하겠다”며 “가능한 모든 수단을 강구해 사이버 성폭력 사범을 끝까지 추적 및 검거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같은 달 17일, 서울경찰청은 n번방 사건의 핵심 용의자로 추정되는 20대 중반 남성을 검거했다. 경찰은 이날 “핵심 용의자를 포함해 나머지 용의자 4명도 검거했다”고 밝혔다.
한편 국회는 n번방 사건에 대한 청원을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 회부했다. 이는 게재 30일 이내에 10만 명의 동의를 얻으면 소관 상임위원회에 자동 회부되는 국회 청원의 특성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본회의에선 n번방 사건 청원에 관한 법안은 논의되지 않았다. 법사위가 기존의 성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하 개정안)에 해당 내용을 포함해 의결하기로 한 것이다. 개정안엔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해 동의받지 않은 대상의 얼굴 등을 음란물과 합성해 유포할 경우 처벌하는 내용이 추가됐다. 국회는 청원에서 요구된 디지털 성범죄의 양형기준 설정 및 수사 정비 등을 개정안에 넣지 않은 것에 대해 “기존의 개정안에 청원의 취지가 반영돼있기 때문”이라 답했다. 이어 같은 달 17일 개정안은 국무회의에 의결됐다. 해당 개정안은 3개월 후인 6월 25일부터 시행된다. 이에 따라 딥페이크 영상물을 제작·반포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특히 영리 목적이 인정되면 ‘7년 이하의 징역’으로 가중 처벌된다.

◆계속되는 논란과 앞으로의 방향

이런 정부의 대응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이번 달 3일, 법사위 제1소위원회의 회의록 내용이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회의록에 따르면 김인겸 법원행정처 차장은 ‘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디지털 성범죄 해결에 관한 청원’에 대해 논의하던 중 “이것도 소위 n번방 사건이라는, 저도 잘은 모르는데요”라고 발언했다. 이에 n번방 사건의 내용을 숙지하지 않고 논의했단 의혹이 제기됐다. 김도읍 미래통합당 의원은 “청원한다고 법 다 만듭니까?”라 하며 불만을 표시했다. 한편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위원은 “요즘 새로운 시대의 물결”이라며 청원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결국 법사위는 개정안에 디지털 성범죄의 양형기준 설정 및 수사 정비 등의 청원 내용은 제외한 채 딥페이크 처벌만을 추가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성연합)은 개정안이 졸속 처리된 법안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이번 달 11일, 여성연합은 개정안을 향한 성명문을 발표했다. 국민동의청원에서 요구한 △디지털 성범죄의 엄격한 양형기준 설정△불법 촬영물 소지 및 공유△그루밍 성폭력*** 처벌이 개정안에 빠진 것을 지적한 것이다. 또한 여성연합은 △성적 촬영물 유포를 빌미로 협박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불법 촬영물 소지 처벌△성폭력 범죄의 구성요건을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에서 ‘타인의 의사에 반하여 타인의 신체를 성적으로 침해하는’ 모든 행위로 확대△온라인 그루밍에 대한 개념 규정과 형법상 처벌법 도입 등 총 7개의 사항을 개정안에 포함하라고 요구했다. 동시에 여성연합은 개정안에 대해 “그동안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던 텔레그램 내 성착취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단 점에선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텔레그램 내 성착취를 넘어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되고 있는 디지털 기반 성착취에 근본적으로 대응하기엔 부족하다”며 실망감 또한 표했다.
국내 여성단체는 계속해 성범죄의 엄격한 처벌 기준 설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문제 해결의 핵심은 처벌”이라며 “범죄가 적발되면 강하게 처벌된단 걸 가해자가 아는 순간 성범죄 발생률은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폴란드에선 성범죄자의 동의 없이 화학적 거세를 시행하자 성범죄 재발률이 30% 대에서 5% 대로 감소했다. 성범죄 발생을 줄이기 위한 새로운 대책을 고안해 볼 때다.

*딥페이크(Deepfakes): 특정 인물의 얼굴 등을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특정 영상에 합성한 편집물
**법제사법위원회: 국회 상임위원회 중 하나로, 법제·사법에 관한 국회의 의사결정기능을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역할을 함
***그루밍 성폭력: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호감을 얻거나 돈독한 관계를 만들어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성폭력을 가하는 것

이현지 기자 100hyunzi@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