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가 능사? 우리나라의 폐지 돌림노래

2019-11-24

이상우 기자 | 99sangwoo@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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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3일, 서울대학교(이하 서울대)는 조국 전(前) 법무부 장관의 딸에 대한 장학금 특혜 관련 논란 이후 2020년 1학기부터 재학생 성적우수 장학금을 전면 폐지하는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서울대 측은 정치적 이해관계와는 별개로 원래부터 계획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해당 대학이 최근 조국 일가 논란에 직접 연관된 와중에 강행된 개혁이라는 점에서 일각에선 논란을 무마하기 위한 보여주기식 행정 처분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는 비단 서울대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부터 제기됐던 문제의 관행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 해경 폐지와 국군기무사령부(이하 기무사) 내정 간섭 논란 이후 기무사 해체 등 최근 사례만 봐도 우리나라의 일방적인 조직 해체 및 폐지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에 구체적으로 어떤 사례가 있는지 알아보고, 해결방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의 서울대

논란이 커지자 서울대 행정처는 문제 진화에 나섰다. 서울대 관계자는 “조국 일가 논란이 발생하기 이전인 7월부터 계획했던 개정안으로 절차대로 진행한 개혁”이라며 “정치적인 이해요소가 개입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성적 장학금 폐지는 서울대가 처음이 아니다. 고려대학교도 2016년 성적 장학금을 폐지한 바 있다. 그러나 서울대의 조치는 장학금 수혜에 직접적 이해관계자인 학생들과의 협의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개혁을 단행했다는 점과 장학금 특혜논란으로 세간의 이목이 쏠린 시기에 급작스러운 장학금 폐지를 결정한 점에서 고려대 장학금 폐지 때와는 상이하다. 실제로 서울대학교 페이스북 페이지 대나무숲에 장학금 폐지안을 다룬 많은 글이 올라왔다. 또한 ‘조국 일가를 의식한 독단적인 개정에 애꿎은 학생들만 피해를 본다’는 댓글이 가장 많은 공감을 받았기도 했다.

◆허울뿐인 보여주기 행정 처분, 우리나라 폐지 잔혹사

졸속 행정 논란은 비단 서울대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가 내놓은 사후 대책은 해양경찰청(이하 해경) 해체였다. 당시 정부는 해양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해경이 그 의무를 다하지 못했으므로 해경을 해체하고 대대적인 인사 개편을 단행한다고 발표했으나 여론의 반응은 싸늘했다.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알아내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수박 겉핥기식의 졸속 대처였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충분한 사전 협의 없이 처리된 해경 해체가 곧이어 해안 경비의 공백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2017년 해경이 다시 설립 될 때까지 3년이란 시간 동안 해양 범죄 적발 건수는 2013년 기준 5만 718건에서 2015년엔 2만 7,031건으로 감소하며 실적은 절반으로 줄었다. 결과적으로 해경 해체란 파장은 자연스레 세월호 사건 중 핵심 사안인 참사 관련자의 책임추궁마저 흐지부지하게 만들었다. 당시 해양경찰청장이었던 김석균 전(前) 청장을 포함한 해경 관계자들이 별다른 징계 없이 지나갔기 때문이다. 나아가 해양 보안에 공백기가 생겨 국가적으로 큰 손해를 가져왔다.
이러한 졸속 행정은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발생했다. 문재인 정부는 민간인 사찰 및 계엄령 논란으로 여론의 질타를 맞은 기무사에 대해 강력한 개혁을 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기무사가 국가안보지원사령부로 간판만 바꿨을 뿐 조직과 구성원은 그대로 유지됐다는 점에서 허울뿐인 개혁이란 비판도 제기됐다. 여론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군대의 정치적 개입을 사전에 방지할 개선안 마련을 기대했으나 정부의 대처는 전 정부와 다름없는 보여주기 식 행정 처분에 그쳤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기무사의 사령관이었던 이석구 중장의 징계가 직위해제 선에서 마무리됐고, 논란이 된 사령관의 대통령 독대가 그대로 유지되면서 개혁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사라지지 않는 보여주기식 관행, 원인과 해결책은?

우리 사회의 졸속 처리 관행은 꾸준히 지적되던 문제였다. 특히 국가조직에서 이러한 관행은 비일비재했다. 정치학자들은 “5년 단임제인 현행 상, 정부가 한정된 임기 내에 정치적 성과를 냄으로써 정치적 지지층을 공고히 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대선 때마다 뒤바뀌는 치열한 정국 속에 집권당이 이전의 정부와 확실한 차이를 보여야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 정치권에 팽배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현 정권은 전 정부와 정반대인 탈원전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원전을 아무런 대안 없이 폐쇄한 바 있다. 이는 전력 공급 감소로 이어졌고 수급에 차질이 발생했다. 이에 지난달 30일 전기료 할인 혜택을 없애 국민의 전기 사용량을 줄이려는 촌극을 벌여 야당과 여론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재묵 우리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기존 관행에서 벗어난 새로운 개혁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문제가 발생한 조직의 기능을 정확하게 파악해 순기능을 극대화하고 역기능은 최소화할 수 있게 협의를 해가야 한다는 것이다. 충분한 의논과 합의를 통해 도출된 개혁엔 그만큼 시간과 노력이 투자되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해경 해체 후 재창립과 같은 졸속 행정보단 훨씬 더 이롭기 때문이다. 이어서 이재묵 교수는 이번 서울대 장학금 논란과 관련해 “이번 서울대의 행정 조치는 대·내외적 갈등과 의혹을 규명하지 못한 채 구성원 간 갈등만을 증폭했다”며 “해당 사건 이해관계자인 △학생△교수△행정처가 모여 장학금 위원회를 조직하고 나아가 공론화를 통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개선안을 도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대학교 장학금 폐지 논란은 학교에 국한된 내부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를 반영한 페르소나로 보이는 측면이 있다. 한층 성숙된 개혁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사회적으로 한층 진일보했음을 증명할 수 있을지 서울대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이상우 기자 99sangwoo@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