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는 백조

2019-11-08

허지나 기자 |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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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며 하고 싶은 일이 많아지고 좋아하는 것들이 달라져도 그것은 결국 나에게 ‘멋’이었다. 대학에 진학해 지금의 전공을 선택한 이유도 내가 꿈꾸던 멋있는 사람에 한 발짝 가까워질 것 같아서였다. 학보에 지원한 이유도 비슷하다. 기자는 멋있는 직업이고 대학 생활 중 기자로 활동한다는 건 멋있는 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 언론의 기자라는 건 백조에 가까웠다. 우아하고 완벽한 결과물을 보이기 위해 보이지 않는 물속에서 쉼 없이 발을 움직여야 했다.
학보에 합격한 뒤, 설렘과 걱정이 공존하는 마음으로 방중 수습 교육을 기다렸다. 교육 기간엔 백조가 되기 위해 발장구치는 법부터 차근차근 배워가야 했다. 앞으로 발장구 쳐야 할 물의 특성과 지켜야 할 규칙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러면서 점차 적합한 자세를 잡고 나아갈 방향을 익혀갔다. 다음으론 열심히 발장구치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이 물은 잔잔하고 평화로우며 먹이가 넘치는 풍요로운 환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먼저 학보의 한 호를 구성하기 위해 회의 주간엔 먹이를 찾아 돌아다닌다. 그렇게 먹을 수 있는 먹이와 아닌 것을 구별해내고 나면 잘 차리고 손질하는 일이 남는다. 먹이의 출처부터 성분까지 최대한의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그럼에도 부족하다면 다른 사람에게 먹이를 보여주고 적당한 반응을 받아와야 한다. 이 단계가 끝나면 마감 날까지 다시 고르고 잘 조합해 요리한다. 이렇게 요리된 글은 마감 당일에 다시 숙고해 끊임없이 고쳐낸다. 요리가 끝나면 먹음직스럽게 잘 담는 일도 중요하다. 기사가 완성되면 조판이 시작된다. 반복해서 수정하고 오류를 찾아내며 신문의 틀을 맞춘다. 그리고 신문 발행일이 돼서야 이 모든 발장구를 잠시 쉴 수 있게 된다.
다만 유의해야 할 점은 이 물엔 백조가 여럿이라는 사실이다. 공동체는 갈등과 시행착오를 통해 성장한다. 서로 다른 물에 살다 온 여럿이 모이면 갈등은 필연적이다. 백조 간에 갈등이 생기면 한바탕 큰 파동이 일어난다. 요동치는 물은 뜻밖의 것을 데려와 백조들을 환기시켜주기도 하지만 무언가를 물 밖으로 떠나보내기도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이 어떠했든 역시나 이별의 끝은 쓰다. 하지만 그 파동에서도 단단히 버텨낸 백조들은 단결력을 얻는다. 또한, 그렇게 적응하며 애정과 책임감을 배운다. 마침내 뭍으로 나오면 학교 곳곳에 놓여있는 학보를 볼 수 있다. 그때 비로소 작지만 소중한 뿌듯함을 얻으며 다음 호를 위한 원동력을 키운다.
누군가 나에게 ‘아직도 대학 언론 기자가 멋있냐’고 물어본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비록 물 밑에서 일어나는 일을 묵묵히 삼키는 백조가 돼 스스로의 미숙함을 마주해야하고 간혹 ‘누군가의 신경을 거스르는 것은 아닐까’하는 고민을 해야 해도 여전히 학보 기자는 멋있다. 치열하게 발전해나가고 올바르다고 믿는 쪽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잘 견디며 단단한 사람이 돼 학보 생활을 마친다면 멋있는 일을 해냈다고 얘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