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에 대한 모든 것 2019-05-12
안효빈 기자 | 97anhyobin@hufs.ac.kr 조회수 275  댓글 0
최근 ‘패스트트랙’ 법안 지정에 대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과 이를 제외한 △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이하 여야 4당)이 갈등을 빚고 있다. 자유한국당원들은 ‘좌파독재타도 헌법수호’를 대표 구호로 내세워 패스트트랙 지정에 반대하는 집단 시위를 벌였으나 저지에 실패했다. 지난달 25일부터 시작된 여·야 몸싸움은 일단락됐으나 이번 달 2일, 국회 본청 앞에서 진행한 집단 삭발투쟁을 시작으로 본격 장외 시위를 예고했다. 반면 여야 4당은 같은 날 열린 원내대표 회동에서 패스트트랙 지정 안건에 대해 자유한국당과 협의·조정 노력을 기울일 것을 공언했다. 현재 논란의 중심에 선 패스트트랙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다.

◆‘패스트트랙’의 의미와 지정 과정

패스트트랙은 ‘신속처리안건 지정 제도’라고도 불린다. 발의된 법안을 최대 330일 뒤엔 반드시 표결함으로써 법안을 신속하게 처리해 국회의 법안 무기한 표류를 막기 위한 제도다. 이는 2015년 5월에 개정된 ‘국회선진화법’의 주요 내용 중 하나다. 국회법 제85조 2항에 따라 국회 상임위원회*에 회부된 안건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기 위해선 재적 의원 과반이 서명한 신속처리대상안건 지정요구 동의(이하 신속처리안건 지정동의)를 의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또 안건의 소관 상임위원회(이하 소관 상임위) 소속 위원은 신속처리안건 지정동의를 위원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의장 또는 소관 상임위 위원장은 이를 신속하게 무기명 투표로 표결에 부친다. 이는 재적 의원 3/5 이상 또는 소관 상임위 재적 위원 3/5 이상의 동의로 의결한다.
패스트트랙 지정이 가결됐을 경우 소관 상임위는 이에 대한 심사를 지정일로부터 180일 이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90일 이내에 마쳐야 한다. 또 이 기간 내 소관 상임위 심의와 의결이 끝나지 않더라도 자동으로 본회의에 부의***된다. 본회의에선 60일 이내에 해당 안건에 대한 찬반 표결을 해야 한다. 따라서 최장 330일 이내에 최종 법안 통과 여부가 결정된다. 소관 상임위 절차 간소화를 통한 기간 단축도 논의되고 있다. 이 경우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내 ‘안건조정위원회’와 국회의장의 동의에 따라 180일 이내에 처리될 수도 있다.

*상임위원회: 국회 본회의에 안건을 부의하기 전에 그 소관에 속하는 의안·청원 등을 심사하기 위해 설치된 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법무부△헌법재판소△법원 등의 기관에 관한 사항을 심의·감독하고, 탄핵 소추에 관한 사항, 국회규칙안의 체계·형식과 자구의 심사에 관한 사항들을 관할하고 있는 국회의 상임위원회

*** 부의: 토의에 부침

◆이전의 패스트트랙 지정 사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하 사회적 참사 특별법)이 2017년 11월 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는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되고 난 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1호 안건이다. 구체적으로는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1기와 가습기 살균제 사건 국정조사 특별 위원회가 해당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과 관련 책임자 처벌을 완수하지 못했단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법안이다. 해당 법안의 주된 목표는 △사건 원인△수습과정△후속 조치 등의 사실관계와 △책임소재 진상규명△피해자 지원△재해 및 재난의 예방과 대응 방안 수립△안전사회 건설 및 확립이다.
2016년 12월 23일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여당인 새누리당의 반대로 사회적 참사 특별법 처리가 여의치 않자 국회의 환경노동위원회(이하 환노위)를 통해 이를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했다. 이는 환노위원 16명 중 야당 측 위원이 10명으로 위원회 재적 위원 5분의 3을 넘었기에 가능했다. 이같은 과정을 거쳐 사회적 참사 특별법은 2017년 11월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216명 중 △찬성 162표△반대 46표△기권 8표로 통과됐다. 같은 해 6월 23일 환노위(180일), 9월 21일 법제사법위원회(90일) 심사 기간에 이어 본회의 부의 기간(60일)까지 채우면서 본회의에 자동 상정돼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이번 패스트트랙 지정 4개 법안과 그 내용은?

이번 패스트트랙엔 △선거제 개편안△고위 공직자 범죄 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검·경 수사권 조정안 등 총 4개 법안이 지정됐다.
선거법 개정안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적용, 선거권 연령 만 18세로 하향 등이 핵심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다. 소선거구제는 하나의 선거 지역구에서 한 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제도다. 이에 따르면 유권자가 후보자 한 명에게 투표해 득표수가 많은 후보자가 당선된다. 비례대표는 정당 지지율에 따라 해당 정당에서 공천을 받아 순위대로 선출된다. 따라서 득표율 1위를 잇는 지역구가 유의미한 투표수를 얻어도 선출되지 못해 실질적인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개정안은 현행 선거제를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개혁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현행 선거제와 투표 방식은 같으나 의석 배분 방식에 차이가 있다. 총 의석수는 정당득표율로 정해지고 지역구에서 몇 명이 당선됐느냐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수를 조정한다. 이번 개정안에 따르면 현행 국회의원 정수는 300명을 유지하되 지역구 의석은 기존 253석에서 225석으로 줄어들고 비례대표 의석은 기존 47석에서 75석으로 늘어난다. 다만 여·야 이해관계 합의를 위해 비례대표 의석은 전국 단위 정당 득표율을 기준으로 연동률 50%를 적용한 준연동형으로 배분한다. 정당 득표율을 전체 국회의원 수에 적용해 선출된 수가 지역구의 수보다 크면 그만큼 비례대표에서 추가 선출하고 적으면 비례대표에선 한 명도 선출할 수 없다. 따라서 다수당 의석 감소분을 소수당이 나눠 가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소수 정당에겐 비교적 유리하나 거대 정당에겐 불리할 수 있는 제도다. 동시에 소수 의견이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현행 선거제보다 민주적인 제도라고 보는 관점이 존재한다. 지역구 선거에서 유리한 거대 정당의 경우엔 비례대표 의원을 선출하지 못 하는 상황이 우려되므로 개혁안을 반대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이번 개정안이 적용되면 정의당 등 범여권 세력이 과반 이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어 자유한국당 입장에선 제1야당 위치를 유지해도 범여권 세력에 밀려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자유한국당이 패스트트랙을 격렬히 반대하고 나서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여야 4당 합의안인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이하 사개특위)가 지정한 공수처 설치 법안과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이 동시에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됐다. 이에 따르면 공수처는 △수사권△영장청구권△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대한 법원 재정신청 권한을 갖게 된다. 이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는 검찰 권력을 견제하고 독립적이고 투명한 수사를 하기 위함이다. 위 두 법안의 차이점을 살펴보면 권은희 의원의 공수처의 인사권은 독립한 수사처장에게 있다. 또, 수사대상을 고위 공직자와 그 가족의 부패행위에 한정하고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기소심의위원회’를 별도로 설치한다. 반면 여야 4당 합의안은 공수처의 인사권을 대통령이 갖도록 하며 판·검사와 경무관급 이상 경찰 수사에서만 공수처가 제한적으로 기소권을 가진다. 이에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이하 나 대표)는 “공수처 설치는 3권 분립 체제를 침해하며 대통령이 판·검사를 장악하는 것이기에 반대한다”며 공수처 설치에 반기를 들었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은 경찰에 1차 수사권과 종결권을 주고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검찰이 경찰로부터 사건을 송치받기 전엔 경찰의 수사에 관여할 수 없도록 하고, 경찰이 모든 사건의 일차적인 수사권과 종결권을 갖도록 한다.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검찰이 경찰 수사에 대한 보완 수사를 요구할 수 있으며 고소인 등 사건 관계인이 이의를 제기하면 곧바로 검사에게 사건을 송치하도록 한다. 한편 이번 개정안엔 그동안 논의되지 않았던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 제한’이 추가된다. 피의자신문조서란 검찰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와 피의자 신문 과정이 정리된 문서이며 경찰 조서와 달리 법정에서 증거로서 효력이 인정됐었다. 이에 대해 문무일 검찰총장은 “현재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법률안들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며 “특정 기관에 통제받지 않는 1차 수사권과 국가정보권이 결합된 독점적 권능을 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경찰청은 “수사권 조정법안은 검사의 경찰 수사에 대한 중립적이고 객관적 통제방안을 강화했다”며 “개정안은 경찰의 수사 진행단계 및 종결사건에 대한 촘촘한 통제장치를 설계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검사는 영장청구를 통해 언제든 경찰 수사에 개입할 수 있는 만큼 경찰 수사권 비대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고 덧붙였다.

◆협상 테이블에 놓인 패스트트랙

패스트트랙 지정이 확정됐으나 아직도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번 달 1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여야 4당 원내대표들은 각종 노동 관계법 등 산적한 민생·경제 법안 심의의 시급함을 강조하며 자유한국당의 복귀를 촉구했다.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에서 일어난 폭력 사태에 대한 사과의 뜻도 전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국회는 대화와 타협 속에 합의를 이루는 민의의 장”이고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논의조차 거부하면 안 된다”며 “자유한국당을 포함한 여·야 5당이 함께 개혁안을 다듬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비록 당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울 순 없겠지만, 정치는 민의와 국익을 우선으로 해야 하는 것이 그 숙명”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나 대표는 “어제 박대출 의원이 먼저 삭발투쟁을 시작했으며 이는 개인 차원의 항의를 넘어선 것으로 보면 된다”고 발언했다. 이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 설치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판단에 따라 이를 충분히 설명하기 위해 ‘선거제·공수처·민생 삼위일체 콘서트’를 열기로 했다”고 말했다. 여야 4당이 촉구한 자유한국당 국회 복귀에 대해선 “여야 4당이 파국으로 몰고 가고 이제 와 갑자기 들어오라는 것은 진정성이 없다”며 “패스트트랙 철회와 사과가 먼저라고 생각한다”며 협상 테이블 참석에 거부 의사를 밝혔다.


안효빈 기자 97anhyobin@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