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 성범죄, 어디까지 아시나요? 2019-03-27
김지수 기자 | 97didu@hufs.ac.kr 조회수 1033  댓글 0
 
지난해 12월 14일 한 인터넷 게시판에 ‘클럽 버닝썬에서 폭행 당해 경찰에 신고했는데 도리어 가해자로 체포됐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후 버닝썬과 연관된 각종 범죄사건이 연일 밝혀졌다. 특히 인터넷을 통해 퍼진 ‘버닝썬 동영상’에서 한 여성이 자신의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자 사람들은 여성이 물뽕에 취한 것 같다며 약물범죄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이번 달 2일 오후 2시에 혜화역 1번 출구 앞에 500명의 여성이 모였다. 이들은△여성대상 약물 성범죄 규탄△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요구△경찰 대응 메뉴얼을 요구하는 시위를 열었다.
또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1월 29일에 “공공연한 여성 대상 약물 범죄 처벌과 △버닝썬을 비롯한 강남 일대 클럽△유흥업소△경찰 간의 유착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 및 처벌을 하라”는 내용의 청원이 게시됐다. 이후 20만 명이 넘는 인원이 청원에 동의해 문재인 대통령의 답변을 받았다. 현재 약물 성범죄에 사용되는 약물△약물 성범죄에 대한 국내·외 판례와 관련법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자.

◆약물 성범죄에 사용되는 약물의 종류


국립과학수사원(이하 국과수)에 따르면 약물 성범죄에 사용되는 대부분의 약물은 수면제나 마취제 같은 강력한 단시간형 중추신경 억제제이다. 약물복용 후 나타나는 약리학적 효과는 △근이완△다행감△기억상실△인식장애△균형유지의 어려움△언어장애△졸음△운동기능 상실△구토 자제력상실△무의식△사망 등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래 전부터 꾸준히 약물 성범죄 형사사건에 관련된 감정물이 국과수에 의뢰돼 왔다. 이렇게 의뢰되는 감정건수와 약물의 종류가 많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약물 성범죄에 이용된 양물의 종류와 약 성분명은 위와 같다. (표1)

◆ 약물 성범죄에 대한 처벌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

현행법에서는 마약을 이용하는 성범죄를 별도로 규정하지 않는다. 형법 제 297조에 따르면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하거나 항거불능인 상태를 이용해 간음 또는 추행하는 것을 처벌하고 있다. 또한 제 299조에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경우, 강간이나 유사강간의 처벌과 같은 수준의 형을 부과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것이 문제 제기의 발단이 됐고 이번 달 13일 약물을 이용한 성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법안이 연속해서 발의됐다.
박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하 박 의원)은 마약류를 이용해 사람을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놓이게 해 간음 또는 추행한 자는 △강간△유사강간△강제추행의 형량보다 높은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을 발의했다. 박 의원은 “형법에 새로운 규정을 발의해 범죄를 예상하고 처벌에 대한 경각심을 고조해야한다”고 말했다.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하 신 의원)도 마약류를 억지로 △투약△흡연△섭취하게 한 경우 그 죄에서 정한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 처벌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신 의원은 “데이트강간 약물로 이용되는 중추신경억제제는 잘못 투약 시 투약자를 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로 위험한 물질”이라며 “법이 정한 절차와 관리 방식에 따라 엄밀하고 조심히 다뤄져야한다”고 말하며 제안 이유를 밝혔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약물 성범죄 중 주목할 만한 판례

약물 성범죄와 관련된 판례 중 대법원 판례(2017도3196)를 주목할 만하다. 법률 사이트 ‘더엘’에 따르면 가해자는 피해자의 커피에 몰래 약물을 넣었다. 이후 가해자는 정신을 잃고 몸을 가누지 못하는 피해자에게 네 차례의 성폭행과 아홉 차례의 강제추행을 저질렀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피해자 모르게 향정신성의약품인 졸피뎀 성분이 포함된 수면제를 투약함으로써 피해자의 생리적 기능에 일시적으로 장애가 발생했다”며 “△피해자의 신체·정신상의 구체적 상태△사용된 수면제의 종류와 용량△투약방법△피해자에게 발생한 의식장애나 기억상실의 정도 등을 종합해 볼 때 피해자는 약물 투약으로 항거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해졌고 건강상태가 악화되고 생활기능에 장애가 초래되는 피해를 입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상해죄에도 해당돼 단순 강간이 아닌 강간 치상으로 판결했다.

◆약물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약물 성범죄 피해자들은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성범죄를 당했기 때문에 범죄 상황에 대한 기억이 없다. 때문에 여기서 비롯한 △일상적 공포△우울증△대인기피현상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 또 신체에 적절하지 않은 약성분과 복용량 이상의 약물을 강제 복용 당했기 때문에 범죄 이후 신체에 손상흔적이 남고 그 휴유증이 일시적이나 영구적으로 남을 수 있다.
또한 약물로 인한 성범죄는 희화화돼 웃음 코드로 소비되기도 한다.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수업시간 중 “친구가 잘리기 전에 버닝썬 무삭제 영상을 빨리 보라고 보내줬다”며 “평소에는 집에 버스를 타고 가는데, 그 날은 집에 택시를 타고 갔다”고 하며 “빨리 열어봤더니 위에는 해가 떠있고 아래서는 무가 잘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법학대학원의 한 학생은 이에 대해 대자보를 붙이며 “피해자가 실재함에도 불구하고 범죄를 가볍게 보고 성범죄 피해를 희화화하는 2차 가해였다”고 주장했다.

◆해외의 약물 성범죄 사례

국과수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에서 발생한 약물 성범죄에는 △플루니트라제팜△GHB△케타민 등의 수면제나 마취제와 같은 약물이 많이 이용됐다. 이 약물들은 적은 용량에 비해 중추신경 억제작용이 커 생체 내에서 강한 영향력을 미친다. 미국에서는 국민 아빠로 불렸던 빌 코스비(Bill Cosby) 코미디언이 2004년 자신의 집에서 안드레아 콘스탠드 템플대 농구부 코치에게 약물을 주입하고 성폭행한 혐의를 인정해 최소 3년, 최대 1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로스앤젤레스에서도 그랜트 윌리엄 로비쇼(William Robicheaux) 유명 외과 전문의와 그의 여자 친구 세리라 로라 라일 리(Cerissa Laura Riley)가 상습적으로 여성들을 유인해 약물을 먹이고 성폭행을 저지른 혐의로 기소됐다. 둘은 약에 취한 피해자와의 성관계를 영상으로 남기기까지 했으며 이는 천 개가 넘었다. 영상 속 피해자들은 환각 상태에 빠져 저항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현재 국내·외를 불문하고 약물 이용 성범죄는 클럽과 같은 유흥업소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소에서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약물 성범죄 가해자에 대한 정부 차원의 엄격한 규제와 법적 제도 마련이 필요한 실정이다.


김지수 기자 97didu@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