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 만에 광주 법정에 선 전두환 전 대통령 2019-03-27
최재영 기자 | 98wodud@hufs.ac.kr 조회수 732  댓글 0
 
1980년 5·18 민주화 운동 이후 39년 만에 광주지방법원(이하 광주지법)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하 전두환)의 재판이 열렸다. 광주 동산초등학교의 학생들은 전두환에게 “전두환은 사죄하라”고 말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광주 시민들 또한 법정에 들어서는 전두환을 보며 “살인자 전두환”, “전두환은 참회하고 역사의 심판을 받아라”라는 거센 항의를 보냈다. 지난 11일에 열린 재판의 구체적 내용과 주요 쟁점을 알아보자.

◆재판이 열리기까지

1997년 전두환은 12·12 쿠데타를 주도하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해 내란죄 혐의로 기소됐다. 대법원은 전두환에게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을 선고했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22일 김영삼 대통령은 당선 직후 국민 대화합을 명분으로 전두환을 포함한 관련자를 모두 특별사면 시켰다. 그러나 전두환은 이번 해 3월 11일 23년 만에 피고인으로 돌아왔다.
전두환은 故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故 조비오 신부는 “1980년 5월 21일 오후 2시쯤 광주 불교로 상공에서 헬기 사격이 이뤄졌다”고 증언했다. 이에 전두환은 2017년 출간한 회고록에 “1980년 광주에서 헬기 사격을 봤다는 조비오 신부는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 표기했다. 이에 故 조비오 신부 유족들은 전두환을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피소했다. 그동안 전두환은 알츠하이머, 독감 등 건강상의 이유로 두 차례에 걸쳐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다. 결국, 강제 구인장 발부로 이번 달 11일 ‘5·18 유공자 故 조비오 신부의 명예 훼손 혐의’에 대한 재판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두환은 법정까지 무리 없이 걸어갔고 “혐의를 인정하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왜 이래”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동안 재판 출석 연기를 미뤄봤을 때 그는 비교적 건강한 모습을 보여줘 많은 이들의 의혹을 샀다.
전두환은 재판 중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전두환 측은 회고록에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적시한 부분에 대해 “개인에 대한 의견이나 평가일 뿐 허위 사실이 아니므로 사자명예훼손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공소사실을 통해 △국가기록원 자료△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 조사 결과△참고인 진술 등을 통해 군의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객관적 증거를 확보했다”며 “전두환 회고록의 허위 내용이 故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반박했다. 재판이 끝난 후 故 조비오 신부 측 유족 조영대 신부는 “전두환 측 궤변에 분통이 터진다”며 “법적 측면은 검찰 측에서 대응하겠지만 회고록의 내용은 가톨릭 사제로서 심각한 내용이다”라고 전했다. 또한 “가톨릭교회 안에서도 큰 사제셨던 분을 향해 광주 학살자(전두환)와 그의 대변인이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한 것은 엄청난 명예 훼손이다”라며 참담한 심경을 표했다.

*사자명예훼손 : 죽은 사람의 명예 훼손.


◆재판의 핵심 쟁점

재판의 핵심 쟁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 실제 헬기 사격이 행해졌는지에 대한 사실 여부다. 전두환의 회고록에는 “5·18 당시 헬기 사격은 없었다”라고 쓰여 있다.
한편 헬기 사격은 실존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2017년 1월 12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은 광주 전일빌딩에서 발견된 총탄 자국이 5·18 민주화운동 때 생긴 헬기 사격의 흔적이라는 감정 결과를 발표했다. 국과수는 헬기 사격이 이뤄진 광주 전일빌딩 외벽과 건물 10층에 있는 전일 방송의 △기둥△천장 텍스△바닥 등지에서 각각 35개, 최소 150개의 탄흔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또한, 발사 위치는 호버링**상태의 헬기에서 발사됐을 가능성이 추정된다고 전했다. 한편 감정 결과는 회고록 출간 3개월 전에 발표됐다. 전두환이 이를 알고도 고의로 헬기 사격이 없었다고 썼는지에 대한 귀추가 주목된다.
둘째, 만일 헬기 사격이 거짓이라 해도 사실로 믿고 썼는지 아닌지에 따라 판결이 달라진다. 고의로 허위 사실을 썼다면 이 또한 ‘사자명예훼손’으로 범죄 요건이 성립된다. 사자명예훼손은 상대방에 대한 허위 사실을 말했을 때만 죄가 성립된다. 일반명예훼손이 상대방에 대한 사실을 말해도 죄가 성립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호버링 : 공중 정지.


◆1심 결과 및 반응

1심 재판부인 신신호 광주지법 부장판사는 전두환의 회고록에 허위 사실이 명시됐다고 판단해 원고 측에 승소 판결을 내렸다. 따라서 해당 발언을 삭제하지 않는다면 회고록 출판·배포를 금지한다고 밝혔다.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의 재판은 1시간 15분 만에 종료됐으며 다음 공판은 오는 4월 8일에 열릴 예정이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어떠한 진정성도 찾아볼 수 없는 전두환 씨이기에 더욱 추상같은 단죄가 필요하다”라고 꾸짖으며 “법원은 법과 원칙에 따라 합당한 책임을 엄중히 물어주길 바란다”라고 요구했다. 민경욱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재판이 공정하게 진행돼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세간의 미진한 의혹들이 역사와 국민 앞에서 말끔히 해소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1987년까지 대한민국 육군 대령을 역임했던 지만원은 5·18 진상규명 대국민 공청회에서 “5·18은 북한군 600여 명이 남한에 내려와 일으킨 폭동”이라며 “북한군 개입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의 순발력과 용기가 아니었다면 이 나라는 쿠데타 손에 넘어갔을 것이다”라며 “전두환은 영웅이다”라는 의견까지 표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 발언에 대해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JTBC 시사 프로그램인 썰전에 출현해 “전두환이 영웅이면 이순신은 악마, 박정희는 옥황상제”라고 꼬집었다. “완전히 가치전도가 되는 상황에서 이런 흐름이 생기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라며 “역사를 바로 세우는 차원에서 이 사건을 매듭짓지 않으면 문제는 또다시 생길 것이다”라고 전했다.


◆재판관할권에 대한 문제 가능성

전두환 측 변호인이 광주지법에 관할 위반 신청서를 제출해 관심이 쏠렸다. 전두환 측은 해당 사건이 광주지법에 속하지 않는다며 해당 법원에서 재판이 진행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주장했다. 재판관할권의 판단 기준은 △범죄지△피고인 주소지·거소지△현재지로 구분된다. 기준에 따르면 전두환은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으므로 범죄지에 광주가 해당돼야 한다. 이에 검찰 측은 지난해 5월 관할 위반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해 법원으로부터 광주지법에 관할이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한편 법원에서는 공식 의견이 아니니 재판 진행 중에 검토하자는 의견을 밝혔다.


최재영 기자 98wodud@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