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선언서

2019-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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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서(현대어)

김은정(한국외대 외국문학연구소 HK교수) 옮김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적인 백성임을 선언한다. 이로써 세계 만국에 알려 인류 평등에 대의를 분명히 밝히며, 이로써 자손만대에 알려 민족의 독자적 생존에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게 한다. 반만년 역사의 권위에 의지하여 이를 선언함이며, 이천만 민중의 충성을 합하여 이를 두루 펴서 밝힘이며, 영원히 한결같은 민족의 자유 발전을 위하여 이를 주장함이며, 인류가 가진 양심의 발로에 바탕한 세계 개조의 큰 기회와 시운(時運)에 맞추어 함께 나아가기 위하여 이 문제를 제기하니, 이는 하늘의 지시이며, 시대의 큰 추세이며, 전 인류 공동생존권의 정당한 발동이므로 천하의 어떤 것이라도 이를 저지하고 억제하지 못할 것이다.
구시대(舊時代)의 유물인 침략주의·강권주의에 희생되어 유사 이래로 몇 천 년 만에 처음으로 다른 민족의 억누름에 아프고 괴로움을 당한 지 이미 십 년이 지났으니, 그동안 우리의 생존권에서 빼앗겨 잃은 것이 그 얼마이며, 의식적 발전에 방해가 된 것이 그 얼마이며, 민족의 존엄과 명예에서 손상을 입은 것이 그 얼마이며, 빼어난 참신성과 독창력으로 세계 문화의 흐름에 이바지하고 보탤 기회를 잃은 것이 그 얼마이겠는가.
아! 오래 전의 억울함을 떨쳐내려면, 눈앞의 고통을 헤쳐 벗어나려면, 장래의 위협을 없애려면, 짓눌리고 위축되고 사그라진 민족의 양심(良心)과 국가의 체면과 도의를 떨쳐 일으키고 펼쳐 내려면, 각각(各各)의 인격을 정당하게 발전시키려면, 가엾은 아들딸들에게 부끄러운 현실을 물려주지 않으려면 자자손손에게 영구하고 완전한 경사와 행복을 안겨주려면, 가장 크고 시급한 일이 민족의 독립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니 이천만 개개인이 마음속에 칼을 품고, 인류의 보편성과 시대의 양심이 정의라는 군사와 인도(人道)라는 무기로써 도와주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나아가 취하매 어느 강자(强者)인들 꺾지 못하겠으며, 물러나 일을 꾀함에 무슨 뜻인들 펴지 못하겠는가.
병자수호조약 이후 때때로 굳게 맺은 맹약(盟約)을 저버렸다 하여 일본의 배신을 벌주려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학자는 강단에서, 정치가는 현실에서 우리 옛 왕조 대대로 물려 내려온 생업(生業)을 식민지의 것으로 간주하고, 문화 민족인 우리를 야만인으로 바라보며 다만 정복자의 쾌감을 탐할 뿐이요, 우리의 오래된 사회적 기초와 뛰어난 민족의 심성(心性)을 무시한다 해서 일본의 의리 없음을 꾸짖으려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격려하기에 바쁜 우리는 남을 원망할 겨를이 없다. 현재를 빈틈없이 꼼꼼하게 준비하기에 급한 우리는 묵은 옛일을 응징하고 잘못을 가릴 겨를이 없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다만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것에 있을 뿐이요, 그것은 결코 남을 파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엄숙한 양심의 명령으로써 자신의 새 운명을 개척해 나갈 뿐이오, 결코 묵은 원한과 일시적 감정을 가지고 남을 시기하고 배척하려는 것도 아니다. 구사상(舊思想)과 구세력(舊勢力)에 얽매여 있는 일본 정치가들의 공명에 희생된 부자연스러움과 불합리함에 빠진 어그러진 상태를 바로잡아 고쳐서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올바르고 떳떳한 큰 근본이 되는 길로 돌아오게 하고자 함이다. 당초에 민족적 요구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던 두 나라의 합방이었으므로 그 결과가 마침내 고식적(姑息的) 위압과, 차별적 불평등과, 거짓으로 꾸민 통계 숫자의 아래에서 서로 이해가 다른 두 민족 사이에 영원히 함께 화합할 수 없는 원한의 구덩이를 더욱 깊게 만드는 오늘의 실정을 보라. 날래고 밝은 과감성으로 오래된 잘못을 널리 바로잡아 고치고, 참된 이해와 동정(同情)에 그 기초를 둔 우호적인 새로운 국면을 타개하는 것이 서로 간에 화를 물리치고 복을 불러들이는 지름길인 줄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또 원한과 분노에 쌓인 이천만 민족을 위력(威力)으로 구속하는 것은 다만 동양의 영구한 평화를 보장하는 길이 아닐 뿐 아니라, 이로 인하여 동양의 안전과 위태로움을 좌우하는 주축인 4억 중국인이 일본에 대하여 가지는 두려움과 시새움을 갈수록 심하게 하여, 그 결과로 동양 전체가 함께 넘어져 망하는 비참한 운명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니, 오늘날 우리 조선의 독립은 조선인으로 하여금 정당한 생존과 번영을 이루게 하는 동시에 일본으로 하여금 그릇된 길에서 벗어나 동양을 지지하는 자의 중대한 책임을 온전히 이루게 하는 것이며, 중국인으로 하여금 꿈에도 잊지 못할 불안함과 공포심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며, 또 동양 평화로써 그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의 필요한 단계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 어찌 사소한 감정상의 문제이겠는가. 아,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도다. 위력의 시대가 가고 도의(道義)의 시대가 왔도다. 전 세기(世紀)에 걸쳐 연마(硏磨)하고 오랫동안 키운 인도적(人道的) 정신이 이제 막 새 문명의 서광을 인류 역사에 쏘아 비추기 시작하였다. 새봄이 온 세계에 돌아와 만물이 되살아나기를 재촉하고 있다. 혹독한 추위가 사람의 숨을 막아 꼼짝 못 하게 한 것이 저 지난 시대의 형세라 하면, 화창한 봄바람과 따뜻한 햇볕에 원기와 혈맥을 떨쳐 펼치는 것은 이 시대의 형세이니, 천지에 돌아온 운수(運數)에 접하고 세계의 새로 바뀐 조류를 탄 우리는 아무 주저할 것도 없으며 아무 거리낄 것도 없다.
우리의 고유한 자유의 권리를 온전히 지켜 왕성한 생명의 즐거움을 실컷 누릴 것이며, 우리의 풍부한 독창력을 발휘하여 봄기운 가득한 천지에 순수하고 빛나는 민족 문화를 맺게 할 것이다. 우리는 이에 떨쳐 일어날 것이다.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으며, 진리가 우리와 함께 나아갈 것이다. 남녀노소 없이 어둡고 답답한 옛 보금자리로부터 활발히 일어나 삼라만상과 함께 기쁘고 유쾌한 부활을 이루어낼 것이다. 먼 조상의 신령(神靈)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우리를 돕고, 온 세계의 기운이 우리를 밖에서 보호하고 있으니 시작이 곧 성공이다. 다만, 앞길의 광명을 향하여 힘차게 곧장 나아갈 뿐이다.

공 약 3 장
하나, 오늘 우리의 이번 거사(擧事)는 정의, 인도(人道)와 생존과 영광을 위한 민족적 요구이니, 오직 자유의 정신을 발휘할 것이요, 결코 배타적인 감정에 빠져 정도(正道)에서 벗어나지 말라.

하나, 최후의 한 사람까지, 최후의 한 순간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意思)를 시원하게 발표하라.

하나, 모든 행동은 질서를 가장 존중하여, 우리의 주장과 태도를 어디까지나 떳떳하고 정당하게 하라.

조선을 세운 지 4252년 되는 해 3월 초하루. 조선 민족 대표:
손병희 길선주 이필주 백용성 김완규
김병조 김창준 권동진 권병덕 나용환
나인협 양순백 양한묵 유여대 이갑성
이명룡 이승훈 이종훈 이종일 임예환
박준승 박희도 박동완 신홍식 신석구
오세창 오화영 정춘수 최성모 최 린
한용운 홍병기 홍기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