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그루밍 성범죄

2018-11-27

안효빈 기자 | 97anhyobin@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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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부 교회 집단을 중심으로 한 성범죄의 심각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는 ‘그루밍 성범죄’라고 불리며 연일 화제가 됐다. 성범죄 가해자는 대부분 해당 교회 목사로, 교회 집단 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이 같은 성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의 수는 개인부터 수십 명에 이르렀고 그 연령대는 10대 청소년부터 4~50대 주부까지 다양했다. 이와 같은 그루밍 성범죄의 의미는 무엇이고 사건의 전말과 이에 대한 처벌 및 대응은 어떤지 알아봤다.

◆ 그루밍 성폭력의 의미

‘그루밍 성폭력’이란 이름은 차림새나 털 등을 ‘손질하다’라는 뜻의 영어 단어 ‘groom’에서 비롯됐으며 성적 길들이기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호감을 얻거나 돈독한 관계를 만들어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성폭력을 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피해자와의 정신적 신뢰를 바탕으로 성적 학대 및 착취를 하는 것이다. 이는 보통 애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거나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어린이나 청소년 등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이뤄진다.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해 원하는 것을 들어주거나 공통 관심사로 오랜 기간 소통하며 피해자가 자신에게 경계를 풀고 의존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점차 성적 가해 행동을 하며 피해자가 이를 범죄라고 느끼지 못하도록 세뇌한다. 피해자가 범죄 사실을 깨닫고 벗어나려 해도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협박하며 피해자의 폭로를 막기도 한다. 그루밍 성범죄가 주로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발생하는 만큼 피해자는 자신이 학대당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잠재적인 심리적 지배 상태에서 벌어지는 범죄이기 때문에 수면 위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표면적으로는 피해자가 가해자와의 성관계에 동의한 것처럼 보여 실질적인 수사나 처벌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 문제가 심각하다.

◆ 그루밍 성폭력 사례

지난달 3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신도들을 대상으로 그루밍 성범죄를 저지른 인천의 한 교회 담임목사와 그 아들인 김 모 목사(이하 김 목사) 부자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는 청원이 게재됐다. 청원 내용에 따르면 김 목사는 미성년자인 신도들을 대상으로 수차례 성범죄를 저질렀으며 담임목사 역시 이러한 아들의 범죄를 은폐하려고 했다. 이후 해당 교회 성범죄 피해 신도들은 이번 달 6일 서울 종로구의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들의 범죄 행각을 폭로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해 신도는 김 목사를 자신이 오랫동안 존경한 스승이자 목사였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처음부터 문제를 바로 제기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한 김 목사가 범행을 저지를 당시 김 목사와 자신은 스승과 제자를 뛰어넘는 사이니 괜찮다며 미성년자인 자신을 회유했다고 증언했다.
다른 피해 신도는 김 목사의 행동을 거부할 때마다 그가 사랑의 감정을 처음 느낀다고 말하며 범죄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이어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김 목사를 믿었다고 전했다. 더이상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며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이들 주장에 따르면 김 목사는 동시에 8명에서 10명에게 그루밍 성범죄를 저질렀으며 전체 신도 200여 명 중 피해자는 최소 26명으로 추정된다. 이날 피해 신도들은 △김 목사 부자의 사과△피해자들에 대한 정신적 피해 보상△김 목사 부자의 목사직 면직△교단 헌법에 성폭력 처벌 규정을 명시 등을 촉구했다.
한편 대한예수장로회는 이번 달 8일 그루밍 성범죄 논란이 있는 김 목사의 면직 처분을 결정했다. 또한 해당 교회와 목사가 공식 입장을 밝히고 피해 신도들에게 사과하도록 지시했다. 이번 사건을 담당하는 인천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성폭력 범죄의 경우 피해자 진술이 거의 유일한 증거이기 때문에 피해 신도들 쪽의 이야기를 들어본 후 수사를 확대할지 결정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현재 경찰은 김 목사에게 출국 금지 처분을 내렸으며 김 목사는 변호인을 선임해 향후 경찰 조사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그루밍 성범죄는 종교계뿐 아니라 교육계에서도 만연하다. 전북 익산의 한 중학교 교사인 35살 A씨는 2013년 12월 12일 오후 4시경 복도에서 1학년 학생이던 B양(13)에게 “패딩 점퍼가 예쁘다”며 “벗어봐라”라고 한 뒤 B양의 허리와 배를 만지며 추행했다. 이를 시작으로 이듬해 2월까지 4차례 더 B양을 추행했고, 2014년 4월 12일에는 성폭행을 저질렀다. 범행 당시 A씨는 B양에게 “일일 부부체험을 하는 것”이라며 회유했다. 범행 시점은 A씨가 결혼한 지 3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때였다. 이후 A씨는 지난해 11월까지 4년간 △집△학교△승용차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B양을 13차례 지속해 성폭행했다. 심지어 A씨는 아내가 출산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당시에도 범죄를 저질렀던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A씨는 위계에 의한 간음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며 전주지법 군산지원 제1형사부는 그에게 징역 9년에 200시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명령을 내렸다. 이어 재판부는 A씨가 학생을 보호해야 할 교사임에도 어린 학생을 성적 노리개로 삼은 점을 질타하며 “성적 수치심과 정신적 고통은 물론이고 피해자가 앞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해 가는 데 큰 장애가 될 것으로 보이는 점, 피해자와 부모가 엄벌을 원하고 있는 점 등을 감안 했을 때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양형 사유를 밝혔다.
친족 사이도 그루밍 성범죄를 피해갈 수 없었다. 검찰에 따르면 2015년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던 C양(19)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부모 역시 그를 정서적으로 방치해 C양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C양은 외삼촌 D씨(40)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고 정서적으로 의지하게 됐다. 이에 D씨는 C양에게 성적 접촉을 시도했고 강제 추행했다. C양은 외삼촌을 힘껏 밀치며 강력히 반항했으나 벗어날 수 없었다. 이후 D씨는 추행의 수위를 높여 C양을 성폭행했으며 이는 약 3년간 지속됐다. 이와 같은 사실을 눈치챈 C양의 부모가 D씨를 경찰에 신고하며 범행은 끝이 났다. 그러나 재판부는 C양과 D씨가 선물을 주고받은 내역, 연인들이 사용하는 스마트폰 앱의 대화 내용 등을 근거로 두 사람이 연인 사이였다고 판단했다. 이에 이번 해 6월 대구지법 서부지원은 D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 사건에 대해 “외삼촌이 조카의 취약한 정신 상태를 이용해 호의를 베푼 후 강제로 성관계를 맺은 사례”라고 설명하며 1심 판결에 대한 항소 의사를 밝혔다.

◆그루밍 성폭력에 대한 전문가 의견

이현숙 탁틴내일 성폭력상담소장 : 그루밍 성범죄를 규제하는 법으로는 유일하게 아동 청소년 보호법에서 ‘성매수 유인행위’에 관한 처벌 조항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작동하기엔 많은 한계가 있으며 처벌되는 사례 역시 발견하기 힘들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 그루밍 성범죄 가해자는 한 명이 아닌 다수의 피해자를 표적으로 삼는 경우가 많아 전자 기기를 압수 수색하거나 아이피 주소를 추적해 성매매 전력을 살피고 숨어있는 피해자를 찾는 등 적극적 수사 기법이 필요하다. 현재 피해자의 동의 여부를 막론하고 강간으로 간주하는 ‘의제강간’ 기준 연령 역시 13세 미만으로 지나치게 낮아 상향이 필요하다.
임수희 대전지법 천안지원 부장판사 : 우리나라에서 성범죄 구성 요건의 기본은 폭행 또는 협박으로 강간한 자를 처벌하는 것이지만, 어른의 말에 복종해야 한다고 배우는 아동과 청소년의 성을 취하기 위해 굳이 물리력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또한 이러한 현실은 성매매가 아니라 ‘성착취’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위와 같은 범죄가 더이상 자행되지 않도록 사회의 각별한 관심과 정부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안효빈 기자 97anhyobin@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