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과 중국을 넘어, 우리학교로 날아든 불씨

2019-12-10

조미경 기자 | 99migyong@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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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부터 홍콩 내에선 ‘범죄인 인도 법안(이하 송환법)’을 계기로 일어 난 민주화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점점 격렬해지는 시위와 이를 진압하려 는 정부 사이의 첨예한 입장 대립이 지속되는 상황이다. 홍콩 민주화 시위는 홍콩인이 대만에서 여자친구를 살해한 뒤 홍콩으로 도피하면서 그를 처벌하기 위해 발의된 송환법 추진이 발단돼 발생했다. 홍콩인들은 중국정부 가이법안을 이용해 홍콩의 반중국 인사를 중국으로 잡아가는 등 홍콩의 민주주의를 억압할 것을 우려했고, 우려는 시위로 진화했다. 본래 홍콩 시민들은 송환법 폐지와 관련돼 시위를 나섰지만, 시위의 목적은 홍콩 민주화로 변해 가고 있다. 우리학교 내에서도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입장과 반대하는 입장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에 우리학교에서 일어난 홍콩 민주화 시위지지 대자보 훼손·철거부터 홍콩 민주화 시위 관련 갈등까지 자세히 알아보자.

◆홍콩 민주화 시위지지 대자보 훼손과 이 와 관련한 갈등
우리학교 내에서도 홍콩 민주화 시위에 관한 갈등이 벌어졌다.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일부 우리학교 학생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담은 대자보를 학교 곳곳에 부착했다. 하지만 시위 를 반대하는 학생들은 대자보를 ‘One China’, ‘폭력시위를 반대한다’ 등의 문구가 쓰인 종이로 덮거나 대자보에 영어와 중국어로 욕설을 남겼다. 결국 대자보는 게시된 지 6시간 만에 1장만 남겨지고 모두 사라지거나 훼손됐다.
이에 노동자 연대 한국외대 모임은 대자보를 통해 “토론과 논쟁이란 건강한 방식이 있는데도 대자보를 훼손하는 것은 매우 비겁한 행동”이라며“, 다른 의견에 대해 토론하고 논쟁 하는 것이 아니라 대자보에 낙서하고 홍보물로 덮어버리는 것은 비민주적이고 독선적인 일”이라고 비난했다. 또한 지난달 14일 우리학교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입장문을 통해 “자율의 터전인 대학에서 대자보는 개인이 자신의 목소리를 공중으로 표출하는 선언이며 권리” 라며 “대자보를 의도적으로 훼손하는 행위는 민주주의의 고비를 이겨낸 우리 학교 학생사회에 대한 기만이며, 학생자치가 지향하는 가치 에 전면으로 반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한편 홍콩 민주화 시위를 반대하는 일부 학생들과 인문과학 관(이하 인문관) 학생식당에 대자보를 부착한 학생들 사이에 언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자보를 부착한 오수민(일반·국 어국문 18) 씨는“인문관 학생식당에서 홍콩 민주화 시위를 반대하는 학생들이 대자보에 욕설을 적는 것을 보고 항의하 자 학생들이 중국어로 조롱하듯 말했다”고 밝혔다. 또한 김 범석 우리학교 학생·인재개발처 학생지원팀 과장(이하 김 학생지원팀 과장)은“지난달 14일 4시경에 인문관 학생식당 에서 충돌이 발생했다는 전화를 받았다”며“나가보니 대자 보 주변으로 중국인 유학생으로 추정되는 학생들 30~40명 이 모여있었고 욕설과 고함이 들렸다 ”고 그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또한 지난달 15일 인문관엔 우리학교 한 여학생의 얼굴을 합성해 욕설을 덧붙인 게시물이 붙여졌다. 이 학생은 우리 학교에 게시됐던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 훼손에 대해 항의하다 홍콩 민주화 시위를 반대하는 학생에게 사진을 찍힌 것으 로 추정된다. 이러한 갈등 양상에 대해 이준성(사회·미디어 19) 씨는“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학생들 이 겪는 갈등 자체 는 부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 양 측 모두 이성을 가지고 논의에 참여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우리학교의 홍콩 민주화 시위관련 대자보 철거
지난달 19일 학교 측은‘홍콩시위 대자보 부착에 대한 학교안내문’을 게시하며 홍콩 민주화 시위와 관련된 대자보를 철거했다. 우리학교 국제교류처장과 학생·인재개발처장은대자보를 통해“표현의 자유와 개개인의 목소리도 중요하지만 무책임한 의사표현으로 인해 학내가 혼란에 빠진다면 학교는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다 ” 며 “ 물리적인 충돌로 인한 인명 피해 가 능성을 생각해 현상황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었다” 고 설명했다. 덧붙여 “학교 구성원이나 자치기구가 아닌, 외부단체의 홍콩시위 관련 대자보 교내 부착 및 관련 활동을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입장에 대해 학생들은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우리학교 한 학생은 대자보를 통해“ 우리학교 학생이 외부 단체의 소속이란 사실 하나만으로 그 단체의 이름을 빌린 학생의 의견표출을 제한하는 것은 온당하 지 않다” 며 “학교는 외부단체의 대자보 부착 및 안전을 핑계로 공론장을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이건희(영어·영문 16) 씨는 대자보를 통 해“ 학내에 붙은 홍콩시위 대자보는 모두 학내 구성원이 붙인 것임에도 외부단체를 운운하는 것은 사실상 홍콩 시위에 관한 지지의견을 내지 못하게 막으려는 명분에 불과하다”는 의견을 더했다. 지난달 20일 사회과학대학 학생회 ‘스펙트럼’은 “학생들이 의사를 표현하는 과정에서‘논란이 된다’는 것은 활발한 공론장의 형성 과정이란 방증”이라며“물리적 충돌은 이와 구분해서 접근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문을 발표했다. 또한,“학교는 기 계적인 중립을 취하며 학생들의 담론 형성 과정 자체를 폭력적으로 억압했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21일 △노동자연대 한국외대모임△우리학교 생활자치도서관△우리학교 정치외교학과 사회과학연구회 갈증△우리학교 중앙동아리 왼쪽날 개 등은 홍콩 항쟁지지 대자보를 무단으로 철거한 우리학교를 규탄하는 기 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장에서 학생들은“이견과 갈등을 이유로 의사표현 자체를 막는 대학은 우리학교뿐이다”며“홍콩 항쟁에 대 한 지지활동과 학내 민주적 의사표현의 자유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들은 이와 더불어 학교 측에 △반 민주적 대자보 철거에 대한 사과△홍콩 시위 대자보 부착제한 방침철회△사건 재발방지에 관한 약속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김 학생지원팀 과장은 외대학보와의 인터뷰에서“폭력사건 발생 후 이러한 상황의 재발을 막기 위해 노동자 연대모임 소속 학생에게 레넌벽(Lennon wall)*과 같은 공론장 설치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이어“노동자 연대모임의 수많은 대자보가 각 학과의 학생회장 선거 포스터나 다른 게시물의 공간을 심각하게 침해했다”며“ 규정상 외부단체의 대자보 부착은 불 가 하지만 대자보를 통해 민주적 토론이 이뤄질 수 있도록 별도의 공간 마련을 제안했는데 이를 거부해 아쉽다”고 토로했다.
*학교 안에 설치된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내용의 포스트잇을 붙이는 공간

◆다른 학교의 홍콩 민주화 시위 관련 대자보 훼손·철거와 갈등
다른 학교에서도 홍콩 민주화 시위와 관련된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13일 레넌벽에 홍콩 시위지지 의사를 밝힌 한양 대학교(이하 한양대) 학생 김 모씨의 신상이 중국판 트위터인 웨 이보에 퍼졌다. 뒤이어 김 모씨는 중국인에게 동전을 맞는 등의 곤욕을 치렀다. 김 모씨는“홍콩 민주화 시위지지 대자보를 게 시하고 나서 50~60명의 중국인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대자보 를 떼라’고 욕설했다” 며 “중국학생들이 ‘홍콩이 한국이랑 뭔 상관이냐’‘, 밤길조심하라’고조롱했다”고 밝혔다. 한편,지난달 21일 한양대는 인문과학관에 설치됐던 홍콩시위 지지대자보와 수백 장의 포스트잇을 한양대 박물관으로 옮겼다. 명지대학교 에선 홍콩 시위지지 대자보로 인해 우리나라와 중국 학생 간의 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학생들은 홍콩 시위지지 대자보를 두고 시비가 붙은 것으로 전해졌으며, 학교 경비실에서 신고해 경찰 이 출동했다.
서울대학교에선 레넌벽이 철거됐다. 홍콩 민주화 시위를 둘러 싸고 상충된 입장을 가진 학생들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학교 측이‘허가받은 홍보물만 부착하라’ 고 요청한 데 따른 조치다. 이 에 대해 김명환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장은“우리나라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치국가지만 도서관에서 게시물을 걸 땐 반드시 중앙도서관 신청 절차를 밟게 돼 있다”며“건설적인 토 론으로 이어질 수 있게 과도한 표현이나 자극적인 형식 등을 피 해주길 당부한다”고 밝혔다. 대자보를 붙인‘홍콩의 진실을 알 리는 학생모임’(이하 학생모임)은 학교 측 방침에 따라 자진 철 거를 진행하고 새로운 레넌벽을 세울 계획을 밝혔으며 레넌벽 이 훼손된 사건과 관련해 고소장을 제출했다.
고려대학교(이하 고려대)에서도 홍콩시위지지 대자보가 훼손 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달 11일 고려대 재학생과 졸업생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고파스’엔 안암캠퍼스 정경대학 후 문 게시판에 붙여진 홍콩 시위지지 대자보가 훼손된 것을 봤다 는 목격담이 지속해서 올라왔다. 이와 관련한 KBS와의 인터뷰 에서 노동자연대 고려대 모임 소속 한 모씨는“중국인 유학생들에게 대자보 위에 종이를 부착하면 안된다고 하니 나를 에워싸고 중국어로 조롱했다”며“열댓 명이 휴대전화로 영상을 찍으며 달려왔다”고 밝혔다. 홍콩 민주화 시위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학 내 구성원들의 갈등 해결에 대한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조미경 기자 99migyong@hufs.ac.kr